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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40년 만에 은둔고수 스승을 다시 만나다

  • 웹출고시간2026.01.22 16:07:18
  • 최종수정2026.01.22 1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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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작가, 영축산 통도사 비로암.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고개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는

가을바람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위 시는 2004년 모 방송국 설문 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이 제일 좋아하는 동요로 뽑힌 '노을'의 가사이다. 평택 대추리 들판의 노을을 그린 것으로 1984년 MBC 창작동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곡을 작사한 사람은 화가 이동진(1944~ )이다. 이동진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해방 후 부모님을 따라 남하해 서울에 정착한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평택 H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하다가 작은 화실을 연다.

필자는 이동진 작가를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83년 겨울에 처음 만났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미술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읍내에 있는 화실 문을 두드렸는데 그때 필자를 맞이해 주신 분이 이동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께 한 달 동안 그림을 배워 운 좋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 30년 넘게 교사와 작가의 길을 가면서 이 수레바퀴를 처음 굴려준 분이 이동진 선생님이기에 문득문득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다 지난 2024년 8월 어느 날 증평에서 선생님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만남을 '하늘이 내린 기적'이라 말씀하시는 선생님 말속에서 제자를 생각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2025년 11월 이동우 미술관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고 어린이들이 '노을'을 불렀다. 선생님이 연주와 노래를 들은 소감과 필자를 만난 사연을 얘기하면서 '사제 2인전'을 열고 싶다는 희망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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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오른쪽).이동진 작가 최근 열린 사제2인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이재영 증평군수가 흔쾌히 허락해 전시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2026년 1월 김득신문학관 전시실에서 '사제 2인전'을 열 수 있었다. 이 전시회에 필자는 종이 딱지 블록을 이용한 Assembly 작품 10여 점을, 선생님은 우리나라 여러 곳의 산과 암자를 그린 12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동진 작가의 그림에서 보이는 산속에 보일 듯 말듯 한 절집은 단순한 풍경묘사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내면의 깊은 세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이동진 작가의 이러한 표현방식은 자연의 위대함과 그 속에 숨어있는 작은 인간의 세계를 함께 바라보게 한다. 그러기에 보는 이에게 깊은 사유와 감성적 울림을 선사했다고 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회는 사막같이 각박한 이 시대에 오아시스 같은 감동을 줬다고 자부한다. 그것은 SNS에 올라와 있는 관람객들의 글들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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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이동우 작가의 사제 2인전 전경.

멀리 이천에서 달려온 오성만 작가는 "4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두 사람, 사제라는 인연은 세월 앞에서 희미해질 법도 한데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해져 전시라는 형식으로 우리 앞에 놓였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작품 발표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비추는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이 전시는 40년 세월을 건너온 따스한 사제의 인연으로 그렇게 노을처럼 조용히 타오르며 서로를 비추고 있었다"라고 했다.

박정식 네오아트센터 대표는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40대 초반 스승은 80이 넘어 백발의 노인이 됐고 까까머리 고등학생 제자는 환갑의 작가가 됐다. 하지만 캔버스 앞에서 그들은 여전히 43년 전 그 화실의 뜨거웠던 열정 속에 살아 있다. 전시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질 때,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삶이란 짧은 만남과 긴 그리움, 그리고 끝내 다시 만나는 필연으로 완성된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진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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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작가의 Assembly.

ⓒ 이동우
문인을 대표해 축사한 이방주 수필가는 "이동진 선생님은 뛰어난 화가일 뿐 아니라 국민동요 '노을'을 작사하신 시인이기도 하다. 이동우 선생님은 지난해 '이동우의 그림 이야기'라는 수필집을 펴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두 분이 미술로 꽃을 피우고, 문학으로 열매를 맺으신 것 같아 기쁨을 금할 수 없다. 물방울 하나로는 무지개를 이룰 수 없다. 오늘 이 자리에서 두 분의 예술혼이 정으로 어우려져 뿜어내는 스펙트럼은 찬란하기 그지없다. 이 아름다운 예술의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마음 깊이 기원한다"고 했다.

이동진 작가는 그림 그리고 글 짓는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독특한 '이동진 체(산돌 문자은행)'를 만들 정도로 필력도 예사롭지 않다. 이를 볼 때 시서화(詩書畵)를 자유롭게 구사한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보는 듯 하다.

이런 스승을 다시 만난 것은 더 노력하는 작가가 되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다. 살면서 감동을 못 느끼면 사는 재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다. 필자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전시회를 여는 것은 스스로 감동하고 그 감동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계속해서 '감동 방앗간'을 열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퍼주며 살고 싶다. 든든한 스승이 있기에 그 길은 순탄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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