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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1.21 14:30:48
  • 최종수정2026.01.21 14:30:56

김경숙

(전)청주시평생학습관장

크레파스로 먼 훗날의 나를 그리곤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화장대에 있던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바르고,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말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스케치북 속 어른이 된 내 모습처럼 살아가기를 막연하지만 간절히 꿈꾸었다.

그러나 세월은 그 그림을 서랍 깊숙이 밀어 넣게 했다. 학창시절을 지나 취업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하며, 인생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어느 것도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았고, 누구도 쉽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지금도 그 시절의 야속함과 속상함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삶은 즐김이 아니라 견딤에 가까웠다. 꿈이라는 단어는 점점 멀어졌고, 분명 내 인생인데도 그 안에 '나'는 없는 것 같았다. 마음은 비어 있었고, 나는 하루하루를 빈껍데기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붙잡혔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나는 다시 꿈을 그렸다. 어느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늦게 눈치 챈 것일까. 그 질문을 품은 채, 나의 꿈을 향한 항해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이 선택을 두고 누군가는 이기적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결혼한 여성은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남편과 자녀를 위해 자신을 뒤로 미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워온 사회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나와 같은 시대, 그리고 그 윗세대를 살아온 삶을, 요즘의 젊은 세대는 쉽게 상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선택의 폭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2026년 새해, 1월의 세 번째 월요일. 졸업을 알리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릴 적 품었던 꿈 하나를 마침내 이루는 순간이었다. 박식하고 지혜로운 박사는 아닐지라도,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졸업이다. 한여름의 더위와 아픈 허리를 견디며 보냈던 시간들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주변의 시선과 수많은 유혹을 견뎌내는 일일 것이다.

2026년은 나를 위한 삶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해다. 오래전 지워버렸던 그림 위에, 크레파스를 다시 쥐고 선을 긋는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마음속에 접어둔 꿈이 있다면, 너무 늦었다고 스스로를 단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다시 그려질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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