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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1.20 14:08:03
  • 최종수정2026.01.20 14:08:03

홍성란

수필가

자화상을 보고 미술관을 찾은 건 처음이다. 그림 전시를 보러 갔다가 다음 전시의 벽보에서 낯선 여인의 자화상을 보았다. 예사로운 여인은 아니지 싶었고 그런 그녀를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멕시코 태생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였다. 짙은 갈매기 눈썹, 강렬한 눈빛, 강인한 엉덩이 턱 콧수염의 흔적 아래 육감적인 붉은 입술. 잉카 여인 같기도 하고 원시림 여인 같기도 했던 그녀. 호기심과 궁금증은 열흘 후 그녀의 전시장을 찾게 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그녀의 이름을 신문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내용은 그녀의 작품 〈엘 수에뇨〉즉 꿈(침대)가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아메리카 여성 화가로서는 최고 수준인 5천470달러(약 806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기사였다. 사고로 평생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그녀다. 순간, 처음 그녀의 그림을 만났을 때의 충격적이고 파괴적이며 솔직하고 사실적이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언뜻 보면 조선판 여자의 일생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용감한 전사 같았던 화가. 자신의 삶을 뜨겁게 받아들였던 열정의 여자다.

사실 그녀의 장애는 유년 시절 교통사고로부터 시작된다. 칼로가 18세 때 탔던 버스가 트럭과 충돌하면서 큰 사고가 났고 이때 칼로는 쇠못이 골반을 관통한 것은 물론이고 척추와 다리도 심하게 다쳤다. 이후 오랫동안 고통스런 재활과 수술을 거쳐야 했고 평생 만성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신체의 한계를 겪은 상황에서도 칼로는 그림을 그렸고 가족들은 침대에 이젤과 팔레트를 놓아줬을 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강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장애의 고통과 후유증으로 인한 불행은 결혼을 기점으로 가중되었다. 그녀보다 21살이나 연상의 유명 화가인 디에고 리베(1886-1957)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하지만, 그녀의 삶은 절망의 파도를 넘나들어야 했다. 특히 남편의 바람과 이로 인한 상처와 외로움 거기에 장애로 인한 수술과 잉태의 바람이 무너지는 뼈아픈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게다가 설상가상 친여동생과 남편의 불륜은 그녀의 자존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녀 역시 화가이기 전에 아내요 평범한 여자였던 것.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에게 구걸하지 않고 묵묵히 외로움의 시간을 가꾼다. 원망이나 한탄보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재결합한다.

그 시절, 그녀의 처절했던 고뇌의 시간이 담긴 그림들이 아직도 찌릿하게 다가온다. 자신의 몸에 못을 박은 처절한 마음의〈부러진 척추〉를 시작으로 얼굴은 칼로 자신인데 몸은 사슴으로 온몸에 화살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상처 입은 사슴〉과 사고의 후유증으로 대수술을 거친 후, 출산의 기회를 잃어버린 슬픔속에서도 행복과 모성의 그리움을 그린〈태양과 삶〉이 있는가 하면, 남편 디에고와의 평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을 짐작케 하는〈우주와 대지〉 등이 있는데 여기엔 원망보다는 안쓰러움과 용서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홀로 있는 시간을 붓으로 정성껏 가꿔 고독으로 승화시킨 칼로만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녀의 그림 위에 '운명'이란 글자를 써본다. 나라면 운명 앞에서 어떻게 했을까. 운명에 맞서 불처럼 '나'를 불태웠을까. 아니면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나의 삶을 뜨겁게 가꾸었을까. 둘 다 맞고 틀리고가 없지 싶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서 그렇다. 온전히 자신이 짊어져야 하기에 그렇다. 이 과정에서 동반되는 외로움이나 쓸쓸함, 고독도 내 몫이라는 걸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통해 솔직히 표현했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게 인간이라고. 그걸 인정하면서 조용히 나를 돌아보라고 그게 고독이고 그걸 즐기며 버티라고 그녀가 그림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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