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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창밖에는 시린 바람이 나무 끝을 흔든다. 볕좋은 새해 아침,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향이 온몸을 이완시킨다. 무채색으로 짙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고요한 휴식을 흔드는 소리에 휴대폰을 확인한다. 지난해 한국어수업을 들었던 학생의 새해인사 메시지다.

'결혼'으로 이어진 인연따라 낯선 이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을 만난 지 십여 년이 넘었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저마다 다른 하늘 아래서 날아온 그녀들의 눈에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말할 수 없는 갈망이 서려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를 가르치며 만난 나는 남편 말고 믿을 수 있는 그녀들의 편이 되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몸과 표정으로 소통하거나 번역기를 통해 그녀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들어준다. 조급해하지않고 천천히 기다리며 마음을 열어간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그녀들의 한국어 실력도 늘어났다. 만날때마다 건네는 한국어 인사도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말한다. 맞춤법이 틀려서 비뚤비뚤하게 쓰던 문장도 완성도가 높아져 갔다. 강사인 나는 '언어'를 가르치며 그녀들의 삶을 마주한다. 사소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낯선 환경에서도 잃지 않는 눈부신 미소, 그리고 '다름'을 '다채로움'으로 승화시키는 용기있는 태도를 본다.

나는 그녀들과 내가 살아 온 인생경험을 나눈다. 아이를 키우면서 터득했던 방법을 얘기하고, 한국 남편의 일반적인 성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 뼘은 더 가까워져 있음을 느낀다. 한번은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엄마 이야기를 꺼냈다가 당혹스럽기도 했다. 캄보디아에서 온 스무살 후반의 앳된 학생이 눈물을 보였다. 고향에 계신 엄마 생각에 갑자기 울컥해졌다고 한다. 가볍게 안아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수업을 종강하는 날,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 와서 파티를 했다. 세계 각국의 요리로 상을 차리면서 그녀들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져서 뿌듯했다. 누군가의 아내나 며느리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응원한다. 한국에서의 삶이 자신의 꿈을 그려내는 선명한 스케치로 펼쳐질 수 있으리라.

봄을 기다리는 나무가 겨울의 시련을 묵묵히 견뎌내듯, 낯선 한국 땅에 뿌리 내린 그녀들의 삶도 머지않아 찬란한 연두색 잎을 틔울 것이다. 말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이 더욱 향기롭고 풍성하게 채워지고 있음이 고맙다.

차가운 겨울, 온기가 전해지는 따뜻한 메시지가 인연의 깊이를 더해 꽃향기가 난다. 무채색에서 저마다의 색을 찾는 그녀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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