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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숨은 보석 같은 작품을 남긴 화가 조영동

  • 웹출고시간2026.01.15 17:30:05
  • 최종수정2026.01.15 17:30:04

조영동 작가, '공-상' 작품.

ⓒ 뉴시스
지난해 겨울 인사동 충북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충북문화재단에서 충북 출신 작가를 발굴해 널리 알리기 위한 전시회로 음성 출신 조영동(1933~2022)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자리였다.

그림에 입문한 지 40년이 넘은 필자가 처음 들어보는 작가일 정도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내로라하는 대가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것이어서 오랫동안 전시장을 떠나지 못했다. 그 후에 네오아트센터에서 조영동 전시회가 개최됐다. 친구인 박정식 대표에게 외국에 살면서 작품을 관리하는 작가의 따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조영동은 1933년 '생골'이라는 충북 음성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필자의 처가도 음성이라 친근감이 더 느껴졌다. 그 시대에 미술대학을 나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돈이 많아 먹고살 걱정 없는 집안의 자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해 조영동의 집은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는 등 평범했다. 공부를 잘하던 그에게 집안에서는 출세의 지름길인 의대나 법대를 갈 것을 원한다. 그러나 조영동은 미술대에 들어갈 것이라 선포한다.

하루하루 끼니 때우는 일을 걱정해야 할 시대에 그림을 그리겠다는 아들에 대해 그의 아버지는 학비를 절대 대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반대를 많이 한다. 하지만 조영동은 그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대학에 들어간다. 집안에서 아무 지원을 못 받은 조영동은 매혈(賣血)과 극장 간판을 그려 물감과 학비를 충당한다. 그럴 정도로 그에게 그림은 본능이며 존재의 이유였다.
클릭하면 확대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조영동 작가, '토양-인성' 작품.

ⓒ 뉴시스
195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어렵게 졸업하고 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시작으로 공주교육대학과 성신여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작품활동도 병행한다. 1973년 그의 작가 인생에 있어 큰일이 일어난다. 한 지인이 그의 추상작품을 보고 "세계의 미술시장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추상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작품 사진들을 휴스톤 대학 총장에게 보냈다. 이에 대학에서는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객원교수로 조영동을 초청한다. 한국이 대외적으로 지금보다 많이 열악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그 시대에 획기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곳에서 영어가 서투른 그를 보고 어째서 영어를 못하냐고 한 친구가 묻자 "나는 돈도 모르고 정치도 모르고 아부할 줄도 모르고 친구 사귈 줄도 모른다. 영어도 못하고 사실 한국말도 잘 못한다. 나는 그림만 그릴 줄 안다"고 재치있게 말했다고 한다. 조영동은 1년 정도 객원교수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때 거기 계속 있었으면 글로벌 작가가 될 수도 있었던 기회를 버리고 귀국을 선택한 것은 미국 생활에서 겪은 인종 차별과 불평등 때문이었다고 한다. 조영동의 셋째 딸 조윤신은 "흑인이 자동차 경적을 두 번 울리니까 앞 차에 타고 있던 백인이 와서 총으로 탕 쏘는 걸 아버지가 보신 거예요. 아버지는 이런 곳에서 예술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셨대요. 견딜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항상 사람들을 챙기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옷이라도 벗어주고 와서 엄마한테 혼도 많이 나셨어요"라고 회상했다.

일본 훗가이도의 한 갤러리에서 초대전 개최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 일본인이 "정말 알 수 없는 친구다"라고 말한다. 이에 조영동은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아는가. 나를 알려면 내 그림을 봐라. 나도 내 그림을 봐야 내가 누군지 안다"라고 대답한다. 그 정도로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고 한다.

이동우

ⓒ 미술관장·화가
말년에는 당뇨의 합병증인 시각장애로 거의 정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는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주변에서 어떻게 눈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림을 그리는가"라고 하면 "나는 추상을 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사람이니깐 보이지 않아도 그릴 수 있다. 더 새로운 추상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봤을 때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여겨졌다.

순수하고 예민했던 조영동이 세상과 부조리한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술뿐이었다. 게다가 가장 친밀한 정신적 매니저였던 둘째 딸이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우울한 삶을 보낸다.

조윤신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많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슬픈 얼굴, 아니면 술에 많이 취해 있는 얼굴들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세상을 이해하지도 또 세상과 타협하지도 못하셨다. 예술보다 예술의 비즈니스가 예술이 되고 예술혼과 철학보다는 돈이 위대한 사회에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냥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화가셨다"고 아버지를 기억한다. 2022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조영동의 작품들은 대부분 성신여대에 기증된다.

이 글을 쓰며 홍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지금이라고 늦지 않았으니 진흙 속에 묻혀 있는 보석 같은 조영동의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가슴에 많은 울림을 줬으면 좋겠다.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이라는 말처럼 이 글이 작가 조영동을 알리는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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