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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영

세명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누구에게나 일상은 늘 비슷할 것이다. 매일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잠시 점심 메뉴를 고민한 뒤 다시 업무에 집중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일을 정리하고 내일의 할 일을 생각하며 잠이 든다. 가끔 퇴근 후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주말에 특별한 외출을 하기도 하지만, 그날이 그날인 때가 대부분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조차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삶의 큰 파도가 밀려올 때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바로 이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C, G. Jung)에게 학문적 동반자이자 스승이었던 프로이트(S. Freud)와의 결별은 큰 충격이었다. 이후 융은 외부로 향했던 에너지를 거둬들이며 대학 강의나 학회 등의 사회적 활동을 모두 중단하게 된다. 그리고 대략 6년에 걸친 시간 동안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며 꿈과 환상, 내적 심상에 집중한다. 훗날 융은 이 시기를 '무의식과의 대면'으로 기록한다. 무의식이라는 낯선 세계에 대한 몰입은 자칫 위험을 초래할 수 있지만, 융이 그 심연에 사로잡혀 휩쓸리지 않았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일상을 지킨 것이었다. 융은 의사로서 진료를 지속했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해야 할 일을 했다. 현실의 의무를 다하며 현실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했던 것이 바로 힘든 시간 동안 자신을 지키고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방식이었다. 일상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은 위대한 학자의 삶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마음이 바닥을 치던 그때,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직장을 그만 둘 수는 없었고, 가족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해야 했으며, 하루 두 번 규칙적으로 강아지를 산책시켜야 했다.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겨웠지만,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지켜야 하는 일상이 있었기에 더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대상에 깊이 빠질 수 있다. 게임, 주식, 일, 사랑 등.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대상에 빠져 자기 자신과 삶을 모두 잃게 되기도 한다. 핵심은 '몰입' 자체가 아니라, 그 몰입이 일상 전체를 삼켜 버리느냐에 있다. 게임을 좋아해도 학교에 가고 과제를 해내며 친구와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취미일 수 있다. 세상에 없는 사랑에 빠졌을지라도 현실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연인 외의 사람들과도 필요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살아가는 의미가 되고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수면, 식사, 학업·업무, 인간관계 같은 기본 루틴이 무너지고 평범한 일상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몰입은 중독과 의존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마음의 고통이 일정 한계점을 넘으면, 먹고 씻는 일조차 버거워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상담과 같은 전문적 도움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것이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은 작고 평범해서 그 소중함을 잊기 쉽다. 그러나 삶이 흔들리는 순간,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우리 자신을 지켜내는 힘일 수 있다. 특별한 날을 만들기보다 평범한 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과 주변을 돌보려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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