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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회장

평생교육원 수필 창작 교실 종강 날이다. 한 학기 마지막 날은 특강을 듣는 청강생들이 많아 강의실이 붐빈다. 이번 학기 특강 주제는 '수필 쓰기를 위한 원형성 찾아가기'이다. 한국 설화문학과 성경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 강의가 흥미롭게 마지막 시간을 장식했다. 빈자리 없이 가득 찬 강의실만큼 알찬 내용이 지적 호기심을 채웠다.

강의가 끝난 뒤 수필 창작 교실 문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촐한 종강 파티에 한 문우가 보내온 샴페인이 곁들여졌다. 누군가 수필 교실 반장에게 건배사를 주문했다. 반장은 수십 년 동안 목회 활동을 하다가 최근에 정년 퇴임하신 분이다. 목회자로서 평생 술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그에게 건배사는 낯선 언어이리라. 건배사를 잘 모른다는 그분이 옆에 앉은 내게 도움을 청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서당 개 삼 년에 풍월 읊듯이 술을 좋아하는 배우자 곁에서 들었던 건배사를 가르쳐드렸다.

반장의 선창에 따라 문우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당신 멋져! 당, 당당하게 살자. 신, 신나게 살자. 멋, 멋지게 살자. 져, 져주며 살자."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며 살자'라는 멘트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단순한 몇 마디에서 지혜로운 삶의 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져주며 살자'라는 말이 신선한 새벽 공기처럼 다가왔다.

'당신 멋져!'라는 함축어를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당당하다'라는 형용사의 사전적 정의는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모습이나 태도가 떳떳하다.'이다. 올바른 언행으로 합리적인 가치관을 실천하며 정대하게 살아간다면 매사에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음에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충만한 내적 자유가 절로 신명 나는 삶을 자아낼 것 같다. 그런 삶이라면 자연스러운 멋스러움이 배어나리라.

'져주며 살자'라는 말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무한한 상황 전개 가능성의 여지를 상상하게 한다. '져준다'라는 말을 음미하면 여유와 관용이 느껴진다. 마지못해 지는 것이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양보하는 이해와 배려의 뜻을 품고 있다. 쟁취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한쪽 눈을 질끈 감는 너그러움, 굴복이 아니라 사랑과 포용으로 한발 물러서는 것이다.

서로 져주는 것은 같이 이기는 것이다. 이겼다는 것은 패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내가 져주면 상대방이 이기고, 상대가 져주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져주면 함께 승자가 된다.

지는 것 보다 이기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세상이다. 때로 패배감이 동반된 승리도 존재하리라. 명쾌하지 않은 승리보다, 아름다운 양보로 얻은 승리감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유쾌한 져줌이 내면의 풍요와 자유로움을 안겨 주는 것이다.

"당신 멋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흩어지는 문장을 다시 거두어 내 안에 담아둔다. 병오년 새해 삶의 모토(motto)를 조용히 읊조려 본다. 짧은 문장에서 행복한 삶의 비결을 읽는다.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쌓이면 심오한 철학의 언저리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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