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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고 교장

세상 풍경과 물정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다. 물질적인 변화와 기술적인 변화부터 그에 따른 일상 전반에 걸친 형식의 변화, 우리들 인식과 기준의 변화, 거기에 살아감의 기본 배경이 되는 기후 변화까지 가속되는 속에서, 변화의 흐름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 속도에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젊은 세대는 그들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거나 새로이 배우고 있다.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왜 없으랴마는, 교훈이나 삶의 지혜를 전하는 아버지는 줄어들고 있다. 아버지들이 의도하는 모습은 아니다.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그들 다음 세대에게 고분고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알맞아 보인다. 이유는 충분하다. 아버지가 제공하려는 지식이나 교훈들이 젊은 사람들의 생각 또는 실제 생활과 아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아버지의 지식이나 교훈들의 분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서이며 그러한 경향은 세상의 변화 속도에 비례하는 듯하다. 오히려 젊은이들은 자기네가 배운 것들을 아버지도 배워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아버지에게 직접 알려주고자 한다.

그러한 장면이 빈번해질수록 아버지의 위상은 어설퍼진다. 이야기를 줄이거나 멈추는 아버지, 쑥스러워하는 아버지, 염려하는 아버지, 표정이 굳어지는 아버지, 권위를 잃어가는 아버지, 그래도 따뜻하게 웃어주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겹친다. 혹은 물정 변화에 뒤처지는 그래서 연민하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전히 기대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과도 겹친다.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시대적, 사회적으로 아버지라는 개념 또는 상징은 오히려 더 어지럽게 얽힌다. 사회적 아버지는 작아지고, 흐릿해져 간다. 그러나 아버지가 지워지는 사회는 결국 어른이 지워지는 사회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신산스러운 풍경이고, 젊은 사람에게는 어딘가 허전한 풍경이다. 이러한 세태에 저항하듯 곳곳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시도되고는 있으나 세상 물정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그 와중에 권위 혹은 권위를 빙자한 권력을 탐해 아버지 행세를 하려는 자들마저 심심찮게 보인다. 권력의 허세와 탐욕에 지친 사람들이 그런 아버지를 거부하는 장면 역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회적 광장에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앞장서는 아버지, 어깨를 다독이는 아버지, 방향을 알려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절실해지고 있지만, 어쩌면 이제는 든든한 언덕으로서의 아버지는 빙하가 녹아가듯 거의 녹아버리지 않았을까. 아버지에 속했던 굳건한 권위도 이제는 과거의 흔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아직 남은 아버지의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이성적 아버지, 기준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감성적 아버지일 것이다. 지지해 주는 아버지, 이해해 주는 아버지, 따뜻한 시선을 건네는 아버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내어주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이끌어 주고, 물심으로 힘을 보태주고, 방향을 제시하거나 리드하고 싶겠지만, 이제는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로서의 아버지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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