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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창문을 열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잠이 깬 첫 새벽 누구도 가지 않은 깊은 숲속 얘기가 떠오른다. 어딘지 모르지만 먼 산골짜기 아무도 긷지 못했을 맑은 물소리가 들렸다. 골짜기 작은 새들은 또 이제 처음 꽃을 피우는 나뭇가지에서 울었다.

유사 이래 기록된 사건도 맨 처음의 의미를 중요시했다. 우선 맨 처음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가 있었다. 우리 그 때 첫 발을 내디딘 루이 암스트롱을 기억하는 것도 우주여행의 첫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남극을 탐험한 아문센이나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가 있다. 에베레스트와 알프스 산의 첫 등정자인 '힐러리'경과 '존 헌트'가 신화적 인물이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처음은 그렇게 신선한 이미지였다. 시작할 때의 열정이면 이루지 못할 게 없으련만 포부는 식게 마련이다. 작심삼일이 두려운 것은 처음의 패기가 무너지는 탓이다. 처음이니 '첫'으로 시작되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특별히 예쁜 말이라면 '첫 나들이'가 있다. 갓난아기가 처음 바깥에 나가는 것을 뜻하는데, 그 때 얼굴에 검정 칠을 한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서지만, 태어나서 처음 바깥구경하는 행차를 그렇게 부른다니 감동이다. 오묘한 뜻은 물론 하필 숯검댕을 칠하는 것도 처음에 대한 조심스러운 자세를 나타낸다.

첫 나들이에 만전을 기한다고 검정을 칠하는 것도 중요하나 처음 보았을 때의 신비도 끝까지 지켜줘야 할 게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제가 처음 본 새를 어미로 생각하듯 아기에게 갓 보고 느낀 세상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려니. 큰마음 먹고 하는 일일수록 동티가 나고 어그러질 수 있다. 처음의 열정을 잃어서도 안 되지만 잘 되고 못 되는 것에 집착할 것도 아니다. 처음이 중요하다면 마무리는 더욱 신중해야 될 테고 그래서 초심이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다. 열매 될 꽃은 춘삼월부터 안다지만 초심을 잃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용두사미처럼, 시작은 용의 머리였다가 닭의 꼬리로 유야무야되기도 한다. 시작은 미미해도 초생에 되지 못한 일 그믐에 된다. 생각보다 흐지부지 끝날 바에는, 갈수록 탄력이 붙고 오름세를 타는 경우가 바람직하다. 열흘 길 하루도 못 가서 시들해지면 답이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첫 모 방정'은 꽤나 익살스럽다. 처음부터 모가 나올 경우 방심하게 되고 끝내는 판세에 몰려버린다. 반면에 '첫 도 왕'은 처음 도가 나오면서 분발하게 된다니, 처음에 대한 습관적인 설렘이 얼마나 마이너스인지 알겠다.

나 역시 처음부터 잘 되면 왠지 꺼림칙하다. 시종일관 잘 풀리면 좋으려니와, 쟁개비에 물 끓듯이 금방 식어 버리는 게 문제이다. 처음부터 모가 나왔다고 좋아할 것도 아니지만, 도가 나올 때도 분발하라는 의미가 참으로 해학적이다.

시작만 중요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지지부진할지언정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면서 마무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일찍 태어난 새끼라 해도 무녀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작과 마무리의 탄력성이다. 처음 시작과 유종의 미도 좋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꾸준히 나가는 것이다.

잘 된다고 서두르기보다 자중하는 등 적절한 처세술로 나가는 거다. 남다른 업적을 위해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노정을 답파해야 된다는 의미도 있었으리. 어떤 일이든 초심을 갖고 나가는 삶을 추구해 본다. 올해는 어쩐지 작은 소원이나마 이룰 것 같다. 누구든지 새벽길 가는 사람이라야 첫 이슬 턴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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