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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12.30 17:27:20
  • 최종수정2025.12.30 17:27:20

이한솔

프로덕트스토리지 대표

작업복은 '일을 하기 위해 입는 옷'이다. 그러나 그 정의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작업복은 일하는 신체를 보호하고, 직업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때로는 책임과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하루 중 일하는 시간, 즉 가장 긴 시간 동안 피부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옷이다. 그래서 작업복은 단순한 유니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노동과 삶이 가장 직접적으로 기록되는 옷일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K-작업복은 우리가 빈티지 의류 가게에서 비싼 값에 소비하는 파란 워크 재킷과는 다른 옷이다. 한국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지만, 대체로 시선의 바깥에 머물러 온 사람들의 작업복 이야기다. 하수처리장과 쓰레기 소각장, 자원순환시설, 거리와 건설 현장, 여객기와 열차, 그리고 산불 현장 속에는 늘 사람이 있다. 재난 현장의 한가운데 있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지하 소각장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쓰레기 더미 한가운데, 남색 작업용 재킷을 입은 사람이 서 있다. 우리가 떠올리는 신식 소각장은 제어실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것이 자동으로 처리되는 공간일지 모른다. 실제로 크레인은 버튼 하나로 쓰레기를 집어 소각로 안으로 옮긴다. 그러나 쓰레기가 완전히 재가 되기까지의 마지막 과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생활폐기물 소각 시설에는 언제나 불에 잘 타지 않는 것들이 섞여 있다. 엉켜버린 얇은 옷걸이, 만두 찜기, 부서진 키보드 같은 물건들이다. 이들은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도 완전히 타지 않은 채 남아 재가 이동하는 관을 수시로 막는다. 작업자들은 제어실에서 모니터링을 하다 이상이 감지되면 문을 열고, 쇠꼬챙이 같은 도구로 잿더미 속을 직접 헤집는다. 그때 폴리에스터와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작업용 재킷 위로 불티가 튄다. 이런 화학섬유는 불이 붙으면 크게 타오르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녹아내려 뚝 떨어진다. 문제는 녹은 섬유가 맨살에 달라붙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단순한 화상이 아니라 깊고 오래 남는 상처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작업복에 난연 처리를 하지만, 그 기능은 세탁할 때마다 조금씩 사라진다. 사람들은 하남 스타필드 옆 지하에 거대한 소각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곳에서 누군가는 매일 출근해 불과 쓰레기 사이를 오간다는 사실도.

거리로 시선을 옮기면 형광 연둣빛 조끼에 흰색 헬멧을 쓴 사람이 보인다. 그는 목장갑을 낀 손 위에 위생 비닐장갑을 끼고, 다시 그 위에 목장갑을 씌운다. 음식물 쓰레기를 주로 다루는 오른손에는 방수가 되는 PVC 장갑을 낀다. 손 하나에도 여러 겹의 장갑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먹고 버린 것들에는 이미 분해되기 시작한 음식물과 함께 세제.기름, 알 수 없는 온갖 유해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봉투를 집어 들때마다 음식물에서 흘러나온 수분은 목장갑 속으로 스며들고, 오물은 손에 그대로 배어든다. 젖은 장갑은 쉽게 마르지 않다가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손은 퉁퉁 붓고, 마디마디가 뻣뻣해진다. 작은 상처 하나에도 따가움은 오래 남는다. 이 통증은 특별한 사고로 생긴 것이 아니다. 반복된 노동이 남긴 흔적이다.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도 이어지는 감각일 것이다. 우리가 매일 같은 시간에 쓰레기를 내놓는 만큼, 이 과정 역시 매일 반복되기 때문이다. 거리의 청결은 그렇게 누군가의 손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일부 사례만 소개했지만, 이 외에도 많은 각종 노동자들의 사연들이 현장 곳곳에 쌓여 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K-작업복의 공통점은 '기능성과 취약함'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위험한 환경에 놓여 있지만, 작업복은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하는 경우가 많다. 땀이 차고, 무겁고, 계절을 온전히 견디지 못한다. 작업복이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노동자가 작업복의 한계를 감내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권력이 높을수록 옷의 재질은 좋아지고 선택권이 주어진다. 옷은 점점 더 단정하고 품격 있어 보인다. 반대로 권력이 낮을수록 작업복의 품질은 물론 때로는 지급 횟수조차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작업복은 보호 장비가 아니라 규정상 필요한 형식으로 취급된다.

우리는 흔히 'K-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트렌드와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K-작업복의 시간이 있다. 유행을 타지 않고, 런웨이에 오르지 않으며, 소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옷들. 하지만 이 옷들이 없다면 우리가 누리는 일상 역시 유지될 수 없다.

K-작업복의 고군분투는 옷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질문이다. 어떤 노동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가. 작업복을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의 일과 삶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다. 이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 옷들에 대해, 조금쯤은 묻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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