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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12.23 14:45:34
  • 최종수정2025.12.23 14:45:34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꽃은 반만 피었을 때 가장 아름답고, 술은 조금 취기가 오르려 할 때 참다운 멋이 있다."고 했다. 채근담에서 이르는 말이다. 채근담(菜根譚)의 채근은 채소의 잎과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뜻한다. 책의 이름은 소박하지만 어느 고전 못지않은 삶의 지침들이 갈피마다 담겨 있다.

채근담의 충고를 마저 살펴보자. "꽃이 활짝 핀 것처럼 술에 만취하면 결국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되니, 가득 찬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생각해야 한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공자의 말씀과 결이 같은 가르침이겠다.

그러나 술꾼치고 채근담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드물다. 아니, 본 적이 없다. 시인 이태백은 어울려 마실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항아리의 술을 비워야 진정한 풍류아라고 했다.

'술병을 들고 꽃 사이에서(花間一壺酒) 벗 없이 홀로 마신다.(獨酌無相親)'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은 낭만의 극치로 회자되지만, 냉정히 판단하면 술꾼의 몽롱한 주사다.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좋아했으니, 술을 사랑함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네. 맑은 술은 성자와 같고 탁한 술은 현자와 같다는 말을 들었네./성현과 같은 술을 이미 마시었으니, 어찌 신선을 구할 것인가. 술 석 잔에 대도와 통하고, 한 말 술에 자연과 합치네./취함 속에 즐거움을 얻으면 그만이니, 술 모르는 사람에게 전하지 말게나.'

청주를 성인, 탁주를 현인에 비하며 청주와 탁주를 모두 마신 자신이 곧 신선이라 읊은 이백의 음주예찬이 남다르긴 하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은 엄청난 술꾼이었다. 일단 입에 술을 대면 멈추지 않고 며칠을 술에 젖어 살았는데, 이처럼 술을 좋아하다보니 술로 인한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위왕이 술자리에서 신하인 순우곤에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순우곤은 때와 장소에 따라 주량이 다르다며 '한 말에 취할 때도 있고 한 섬을 마실 때도 있다'고 대답했다. 위왕이 '무슨 그런 주량이 다 있느냐'고 꾸짖자 순우곤은

"왕께서 술을 내리시면 어렵고 두려운 마음으로 엎드려 마시기에 한 말도 못 마시고 취합니다. 그런데 깊은 밤 여인과 편안히 옷을 풀고 마시면 한 섬도 능히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주의 도가 지나치면 어지럽고(주극생란·酒極生亂), 즐거움이 도가 지나치면 슬퍼집니다(낙극생비·樂極生悲)."라고 했다.

모든 일이 술 마시는 것과 같아서 도가 지나치면 쇠할 수밖에 없다는 순우곤의 간곡한 진언을 들은 위왕은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 후 음주를 자제한 위왕은 제나라를 반석위에 올린다. 사기(史記) 골계열전의 일화다.

술이 극에 달하면 난리가 나고, 쾌락이 극에 달하면 슬퍼진다는 옛 말을 다시 새겨야 할 상황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다. 특히 한심했던 사례가 방송인 박나래의 술버릇이다. 스스로 지저분하다고 인정한 술버릇을 그동안 박나래는 자랑처럼 선전했다.

번화가에서 낮 12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2시까지 '완전 맛이 간 상태'로 술을 마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벌이는 작태를 보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코올 사용장애를 예능으로 팔던 박나래의 몰락은 예견됐던 일이다.

적당한 주량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술은 참 좋은 친구다. 음주도 프로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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