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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12.17 14:41:01
  • 최종수정2025.12.17 14:41:00

홍성란

수필가

전시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수많은 지팡이다. 그다음이 지팡이 앞에 놓인 까맣게 탄 나무-더미였다. 검은 나무와 수많은 지팡이. 낯선 설치에 호기심이 동했던 걸까. 습관처럼 먼저 보던 작품 제목을 건너뛰고 지팡이 대열 속으로 들어선다. 어느 것 하나 비슷한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의 시선이 신박하고 다양한 지팡이들에 집중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야말로 82분 작가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창작성이 하나의 예술로 빛을 발하고 있다.

위 작품은 2025 청주 공예 비엔날레에 전시된 작품 '검은 나무, 지팡이로 다시 태어나다'이다. 잠시 후, 의문을 품었던 검은 나무에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올봄, 천년고찰 고운사에 대형 산불이 났었고 그때 탄 나무들을 82분의 목공예 작가들이 소재로 제작한 것이란다. 그런데, 왜 굳이 검게 탄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었을까. 물끄러미 지팡이와 검은 나무를 바라본다. 내 앞에 있는 하나는 이미 죽어 있고 또 하나는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도구로 다시 태어났다. 생(生)과 사(死)의 실체라 생각하니 나무의 죽음이 안타까움으로 차오른다.

이 안타까움은 생존했던 나무의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푸르름을 산과 하늘과 새들과 함께 펼쳐 보려는 봄이었다. 졸지에 나무는 대형 산불에 의해 한마디 비명도, 저항도 못한 채 한순간에 타버리고 말았다. 아니 한 존재의 생이 사라진 것이다. 죽은 것이다. 게다가 죽음의 원인이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데 어이없었고, 인간의 염치없음이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진 산은 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방송에서 한 소식을 들었다. 까만 땅속을 헤집고 싹이 나왔다고 한다. 아주 죽었다고 아니 언제까지 산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지 침묵 속에서 답답하고 안쓰러워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자연은 우리에게 또다시 희망을 건넨 것이다. 자연이 인간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더불어 무한한 자연의 생과 유한한 인간의 생의 대비가 확인된 셈이다. 이것이 자연이 건네는 부활의 방식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을 제작한 목공예 작가들에게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닌, 삶의 경험을 쌓아온 매개이자 창작의 출발점일 테다. 자연인 원형에서 인간을 위한 사물 또는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예술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에서 자연과 인간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읽는다. 오늘 전시장에 나온 뭇 작품들의 공통점도 대부분 그렇다. 예를 들어 전시장에 전시된 손 흙 틀이 건네는 변주의 삼중주나 금속과 유리를 이용한 언어 사유를 담은 조형적 가구, 나무로 깎아 낸 기억의 풍경, 실의 직조하는 감정과 이야기, 심지어 파괴의 흔적 등이다. 그뿐이 아니다. 침묵만 하던 원형이 작가들에 의해 말을 하고 생각을 귀 기울이게 한다. 이 모두 원형에서 내. 외적 다시 태어남으로의 서사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팡이에서 인간의 부활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팡이처럼 눈에 보이는 실체에 빨리 공감하고 가치를 매긴다. 그러나 인간은 내면이 주도하므로 빨리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인간의 내부에는 정신적 삶인 참된 삶과 도덕적 갱생이 기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길로 가는 길에는 동물적 타성이 서 있어 다시 태어남을 가로막고 있다. 이때의 타성은 무언가. 굳어 있는 생각과 행동과 말이다. 새 작품을 만든다는 것도 그렇다. 여태의 타성을 깨는 일 아닌가. 하물며 인간의 부활 또한 이 타성과의 투쟁이 먼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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