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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옥

괴산문인협회 회원

핸드폰 벨이 울린다.

올해 81세로 롤모델로 삼고 싶은 분의 전화였다. 저녁식사 초대다. 제2의 인생으로 선택한 촌(村)에서 취미를 함께하며 알게 된 분이다. 연세에 비해 훨씬 동안이고 생각하는 것도 매우 진취적이다. 오랜 세월을 요식업에 종사하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나이듦에 은퇴를 하고 유유자적 하며 여유롭게 사는 삶이다. 보통의 연배들이 세월을 무심하게 낚는 것과는 달리 삶을 열정적으로 개척하신다.

그 나이대는 교육의 혜택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수탈의 역사를 거쳤다. 대한민국이 독립한 후에는 6.25 동란을 겪었다. 전쟁의 후유증은 심각했었다. 서민들의 생활은 굶주림으로 피폐하였다. 그러므로 의식주(衣食住)가 형편이 없을 때였다. 그리고 사내(男)를 우선시한 유교문화로 여자들에게는 교육으로 부터의 길이 협소했다. 나 또한 6남매의 둘째로 위아래 사내들 사이에 끼여있는 샌드위치 신세였다. 아버지는 두 번의 사업 실패로 평생을 무위도식(無爲徒食) 하며 세월을 무심히 보냈다. 가정을 책임지게 된 모친은 30대 중반에 건축업에 뛰어들었다. 나는 유일한 딸로서 모친을 도왔다. 공부보다는 가사 분담에 시간을 더 할애하며 동생들을 돌봤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라는 속담처럼 문맹자가 태반이었다. 이분은 늦게나마 불타는 향학열로 방송통신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청주를 왕래하며 영어 회화에 추가로 도전하기도. 문화 센터에서 그림 강좌에 수강을 신청해 10여 년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 넘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기반하는 것일까?

귀촌 후 주변이 안정되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외부로 돌려졌다. 취미로 무엇을 배울까? 고심하던 끝에 선택한 '시낭송' 이다. 지난 1년은 강의실 분위기와 동아리 회원과의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탐색이었다. 이분에 대한 첫 느낌은 평범하고 포근한 인상이었다. 결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하나하나 알아 갈수록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보통의 어린 회원보다 암기력이 상당하다. 녹슬지 않은 머리로 그 어렵다는 장시(長詩)를 너끈히 외우고 낭송을 하는 모습에 경이로워 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목소리 톤은 약간의 허스키함으로 듣기가 편안하였다. 회원들의 왕언니로서 모범적인 모습은 60대에게 '여러분도 할 수 있다' 라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에 나이 탓을 하기에는 염치가 없게 만드는 선(善)한 영향력이 있었다. 나는 강의실에서 배움의 동반자로 인연을 맺었다. 왕언니로 모시며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집을 나설 때 양상추와 샐러드에 넣을 참깨 흑임자 드레싱을 챙겼다. 초대된 사람이 하나둘 집안으로 들어섰다. 한 사람은 따끈한 커피를 준비하였으며, 또 한 사람은 사과를 봉지 한가득이다. 조금 늦게 합류한 사람은 서양란을 가슴에 품으며 현관에 들어섰다. 난(蘭)의 화사함은 탄성이 절로 쏟아졌다.

"와우! 좋습니다."

주인 대신 반갑게 맞으며 화분을 받아 거실의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우리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오곡밥처럼 찰져보이는 수수밥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다. 나물로 나온 질경이는 처음 먹어보았다. 식감이 부드러웠고 훌륭한 맛이었다.

인간 관계는 참으로 어렵고 미묘하며 복잡하다. 때문에 집에 초대가 되었다는 것은 서로에게 호감과 신뢰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로 잠시 코드가 맞는 사람과의 만남은 매양 행복하다. 인간의 다양한 교류는 뇌의 엔도르핀을 활성화시키며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날은 우리의 전통적인 온돌방은 아니었어도 그 이상의 우리네 온돌방 풍경을 연출하였다. 깊고 깊은 겨울에 정겨운 사랑방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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