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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논설위원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통치하던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영국에 밤이 찾아와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영국식민지에서 태양이 계속 빛나고 있다는 비유다. 1837년부터 1901년까지 여왕이 다스린 64년간, 세계 최강의 찬란한 전성기를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전 세계의 사회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전환기로 평가받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은 스무 살 때 벨기에 국왕의 주선으로 독일 '색스 코버그 고타가'의 왕자 앨버트 공과 결혼한다. 앨버트 공은 빅토리아 여왕의 외사촌이었다. 빅토리아는 동갑내기인 어린 앨버트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처음엔 혼담에 시큰둥했던 그녀는 앨버트의 실물을 보자마자 마음이 확 바뀌었다고 한다. 나이답지 않게 사려 깊은 태도에 호감을 느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앨버트의 빼어난 외모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는 설이 맞는 것 같다.

외모가 평범했던 빅토리아에게 잘생긴 배우자는 자존심을 높여주는 최고의 혼수였을 것이다. 빅토리아는 '트로피 허즈번드'인 앨버트를 유별나게 사랑했다. 국무회의 때마다 앨버트 공을 대동했기에 실제적 영국 군주는 앨버트 공이라는 말이 있었다.

빅토리아는 남편에겐 애교 넘치는 평범한 부인이었다. 어느 날 말다툼 끝에 마음이 상한 앨버트 공이 자기 방에서 방문을 잠그고 있었다. 화해를 청하러 간 여왕이 노크를 하며 "영국의 여왕입니다"라고 하자 앨버트 공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시 "빅토리아입니다"라고 말을 걸었지만 앨버트 공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남편의 방을 세 번째 찾은 여왕은 상냥하게 남편을 불렀다.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내예요" 이 말을 듣자마자 문을 열고 나온 앨버트 공은 웃으며 아내를 맞았다고 한다.

정이 좋던 부부는 20년 동안 동거하며 9명의 자녀를 낳았다. 결혼 기간의 대부분이 임신 기간이었던 셈이다. 여왕 부부의 결혼생활은 앨버트 공의 사망으로 21년 만에 이별을 맞는다. 장남 에드워드의 훈육을 위해 케임브리지에 다녀오다가 얻은 장티푸스로 남편이 사망했기에 빅토리아 여왕은 에드워드 왕자를 항상 원망했다고 한다.

남편을 잃은 후에도 40여 년간 여왕자리에 있던 빅토리아는 평생 앨버트 공을 애도했다. 앨버트 공이 임종을 맞은 침실을 그대로 보존했으며 잠자리에 들 때도 앨버트 공이 생전에 입던 옷과 유품을 곁에 펼쳐 놓았다. 남편의 머리카락을 통에 담아 장신구처럼 지니고 다녔는데, 이런 여왕의 패션을 흉내 내어 죽은 자의 머리카락을 옷섶에 달고 다니는 이상한 유행이 생기기도 했다.

혼자된 여왕이 화려한 의상까지 멀리했으므로 검은 드레스에 흰 레이스 보를 머리에 쓴 소박한 자태가 대중에게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으로 각인됐다. 이러한 여왕의 지나친 애도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라기보다 한 맺힌 집착과 광기처럼 섬뜩하다.

검은색은 아끼는 것을 빼앗긴 여왕의 분노일지도 모른다. 빅토리아 여왕의 검은색 드레스는 그 후 서양 장례식 복장의 표준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상주조차 전통적인 소복대신 검은색 상복을 입는다.

최근 세상을 떠난 영화계의 큰 별 이순재 배우의 장례식을 찾은 문상객의 복식에 대해 말들이 무성하다. 연예계 후배들의 옷차림만이 아니라 장신구에서 화장, 헤어스타일까지 지적질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보노라니 '참 한가한 사람이 많구나' 싶다. 예절에 맞춰 잘 차려입은 옷보다 절절한 추모의 마음이 우선인데, 어떤 옷 어떤 머리모양이 무어 그리 중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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