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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을 안다는 사람보다, 균형을 설계할 사람이 필요하다"

  • 웹출고시간2025.11.30 15:29:24
  • 최종수정2025.11.30 15:29:30

원광희

청주시정연구원장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균형발전에 대한 기대는 어김없이 부풀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연구 현장과 지역의 변화를 지켜본 결론은 늘 비슷했다. 수도권 정치의 관성 앞에서 국가균형발전은 번번이 밀려났고, 지방은 선거철에만 찾는 '정치적 계륵'으로 취급되었다. 몇몇 지방 출신을 요직에 앉히며 균형발전이 이뤄지는 듯 포장했지만, 지난 반세기는 그것이 착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는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정부만큼은 국가균형발전을 또 하나의 정치적 수사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수도권 중심 정치의 흐름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균형발전은 다시 구호와 행사로만 남을 것이다. 균형발전은 보여주기식 인사나 상징적 메시지로 성과를 꾸밀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진로를 바꾸는 중대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본질은 결국 '사람'과 그 사람의 '철학'에 있다.

균형발전은 단순히 "지방에 살아 봤다"거나 "지방자치단체장을 해 봤다"는 경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국가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거대한 구조 개혁이다. 산업 구조의 편중, 인구 이동의 일 방향 흐름, 교육·의료·문화 인프라의 집중처럼 복합적으로 얽힌 현상을 입체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왜 특정 산업이 한 지역에서 사라졌는지, 왜 청년이 한 방향으로만 떠나는지, 왜 문화와 기회가 수도권으로만 빨려 들어가는지 해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 과제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주요 위원회와 정책 결정 기구의 인선을 보면, 균형 정책의 본질을 깊이 고민해 본 적 없는 인사가 정치적 안배와 이해관계에 따라 자리를 채우는 모습을 여전히 목격한다.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출신 배경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균형발전은 '누가 지방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균형의 철학을 이해하느냐'의 문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농산어촌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거리나 행정구역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와 산업, 인구와 삶의 경로가 오랜 시간 한 방향으로만 설계된 결과다. 이 복합적인 문제를 "지방을 좀 더 지원하겠다"라는 선언 몇 줄이나 일회성 예산 사업으로 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책임하다. 수십 년 동안 지역의 불균형을 관찰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며, 실제 정책을 실험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균형발전의 철학을 현실로 옮길 수 있다. 균형의 철학은 단순한 "공평한 나눔"이 아니라 "함께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있다. 삶의 현장에서 문제를 체감하고, 그 경험 위에 축적된 전문성과 논리를 가진 이들에게서 비로소 진짜 해법이 나온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안배나 상징성 인사가 아니다. 균형을 이해하고 실천해 온 연구자와 실무자를 전면에 세우는 일이다. 지역학자, 도시계획가, 산업·인구 전문가와 같은 이들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역의 시간과 공간을 읽고, 격차를 구조적으로 줄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정권의 단기 성과를 위한 이벤트성 사업이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장기 설계를 맡길 사람들을 발탁해야 한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혹은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명함만으로는 균형발전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 물리적 시설을 몇 개 더 짓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을 고르게 끌어올리는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다. 삶의 경로와 기회의 지도를 새로 그리는 작업이 곧 균형발전이며, 그 구조적 접근 자체가 진정한 균형의 철학이다. 이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정책의 방향과 예산의 우선순위가 맡겨져야 한다.

우리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정치적 구색 맞추기'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험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균형발전은 지역에 대한 감정이나 상징을 다루는 영역이 아니라, 철학과 데이터, 현장이 결합한 전문 영역이다. 이 세 가지를 통합해 사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결국 국가균형발전의 성패는 어떤 인물을, 어떤 기준으로 전면에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기준은 분명하다. 정치적 배경이 아니라 균형의 철학을 이해한 사람, 지방의 표심이 아니라 지역의 구조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 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 "지역을 안다"라는 말만 앞세우는 인물이 아니라, 균형을 이해하고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무대 중앙에 설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균형을 향해 움직일 수 있다. 그 순간이야말로 이 나라가 진정한 균형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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