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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내일은 내 결혼식이다. 마지막 매상이 진행되는 날이라서 대금 정산을 위해 지원을 나갔다. 대금 정산은 개인별로 매상한 다음 정산해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리 별로 이장이 합산해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처럼 수분량을 측정해서 매상 대금이 지급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별도의 수매 지도사와 1등급, 2등급, 3등급, 등외로 도장을 찍는 직원이 따로 있었다.

매상은 어둑어둑해 질 무렵 끝났다. 매상 일이 끝나도 전표와 출금 정산이 맞는지 점검해야 하는데. 전표와 원장을 대조하니 딱 떨어지게 500가마 수매 대금이 더 지출되었다. 80㎏ 한 가마니에 4천800원 하던 때였으니 2,400,000원이 더 계산된 것이다. 각 이장에게 나간 금액을 출납장과 전표를 대조하며 세 시간 정도를 찾으니 모 이장님에게 50가마 지급되어야 할 것이 550가마로 지급되었다.

쉽게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설렘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집 매상 대금으로 시제는 채워 넣었다.

택시를 타고 이장님 사시는 마을로 밤 10시에 찾아갔다. 이장님은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랐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니 이장은 무슨 이야기냐며 펄쩍 뛰었다. 동네 주민들에게 지급했느냐고 물으니 아직 나눠주지는 않았지만, 바로 확인해 줄 수는 없다고 했다. 내일 결혼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실수했으니 정산하고 남는 금액은 신혼여행을 갔다 와서 찾아뵙겠다고 했다.

결혼식 아침에는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렸다. 식장을 둘러보다 이장님을 보았다. 시댁 친척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콩을 볶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예식이 끝나고 식당에 들어가 돌아가며 인사를 드리며 이장님을 찾았으나 이미 자리에 안 계셨다.

우리는 경주 코오롱 호텔에 숙소를 잡고 근처를 둘러보았다. 남편은 싱글벙글 즐거워 보였지만, 내 마음은 내가 실수한 큰일만 가득했다. 친정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걱정하느라 멍해 보이는 내 모습에 남편이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어제 늦게까지 일해서 그렇다는 핑계를 댔다. 남편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는 듯했다. 호텔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방으로 올라갔다. 남편은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죄송해요. 내일 친정에서 만나요.'라는 메모지와 택시비를 화장대 위에 올려두고, 캐리어를 끌고 살금살금 방을 나왔다. 로비에 내려오니 하얀 눈 위에서 별빛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며 하늘 가득 수를 놓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결혼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복잡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면 남편이 얼마나 당황할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장님이 돌려주면 다행이고, 안 돌려주면 모아둔 예금으로 메우면 된다고, 액땜한 셈 치자는 마음의 결정을 끝내고 캐리어를 소리 나지 않게 살살 끌며 객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남편은 아직 자는 듯했다. 메모지를 치우고 조용히 누웠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선물을 들고 이장님 댁에 다시 찾아갔다.

이장님은 "조카를 식장에서 만났어. 신랑이 조카딸 조카라면서…. 여기 돈 가져가!"라고 하시며 돈을 내놓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장과 시댁 조카딸과 친척 관계라니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여행에서 남편을 남겨두고 친정으로 돌아갔다면, 그 일은 남편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날 호텔 로비에서 반짝이는 별빛에 마음이 멈추지 않았더라면, 아마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알콩달콩한 부부로 살아보지 못하고 나도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날 호텔 로비에서 되돌아 들어간 것은 신의 인도였으리라 믿고 싶다.

결혼 전야제를 그렇게 혹독하게 치러서인지 결혼하고 오 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무탈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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