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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한국 근현대 미술가 75분이 고향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이다.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 고향을 그리다' 전시로 대부분 풍경이 주를 이루지만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눈만 뜨면 보던 초가집과 동구 밖 느티나무, 동네 사람과 친구들, 눈에 어리는 강과 바닷가. 이 모두 우리의 산하와 자연, 우리의 일상, 우리의 정념 어린 모습이다. 비록 옛 모습은 간데없고 사람들도 볼 수 없지만, 그 시대, 그 시절 그 사람들을 잊을 수 있을까.

전시는 4부로 펼쳐있다. 제1부가 일제하의 향토(鄕土), 2부는 해방으로 찾은 애향(愛鄕), 3부는 6.25전쟁으로 인한 실향(失鄕), 4부는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망향(望鄕)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조선 말부터 시작해서 전쟁이 끝난 해까지의 순수와 억압 울분 그리고 이념전쟁으로 갈라지기까지 우리 민족이 지나온 질곡의 시간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 속에는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도 있다. 또 사라져 가는 우리의 모습도 있고 새로이 구하는 우리의 모습도 있다. 어찌 보면 우리 민족에게 고향이란 정서적 감성만 있는 게 아니고, 풀지 못한 시름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어떤 시름이었던가. 제일 먼저 나라를 잃은 뼈아픈 역사 속의 베어진 가슴들을 마주하게 된다. 내 땅에서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한 삶이 오죽했으랴. 그럼에도 시인 정지용은 고향을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있겠냐'며 읊었고 울분 속에서도 이상범의〈효천귀로〉는 우리 삶의 순수와 서정성을 담뿍 칠했다. 드디어 2부에는 광복 이후의 모습이다. 나라와 고향을 되찾은 화가들은 각자의 고향을 서정적인 풍경으로 그렸다. 산골은 산골의 모습대로 바닷가 고향은 출렁이는 파란 물결과 해변을 담아냈다. 그러면서 일제하에서 벗어난 미술계에도 이제까지의 일본풍을 걷어내려는 분위기가 보인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유영국의 〈산〉은 입체적으로 표현한 게 인상 깊었고 전혁림의〈통영〉 김환기의〈산월〉 제주가 고향인 변시지등은 공간감을 단순한 조형 언어로 표현했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결국 대 환난과 고통 이별 폐허로 우리 모두를 덮어 버렸다. 정치는 정치대로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화가들이 느끼고 기록한 작품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종무의〈도시〉나 도상봉의〈폐허〉,신명헌의 〈대동교〉는 암담한 현실의 씁쓸함은 물론 가족과 집을 잃은 참혹한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다. 어쩌다 같은 동포끼리 총을 겨눠야 했던가. 그럼에도 미술적 표현은 폐허 속에서도 피어났던 것 같다. 마지막 4부는 망향(望鄕이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의 변천 속에서 마음속에 간직한 고향은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고향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린 고향을 그리워하고 잊지 못하는가. 여기엔 본원적 귀소본능 때문인 것도 있지만 부모님을 비롯한 선대 분들, 이웃과의 연계 때문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 그분들이 모두 살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 계셨다는 점이다. 그 시대 그 시절을 함께 견뎌냈다는 점이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1,000번 이상의 외침(外侵)과 흡수 통일을 막아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게 또 중요하다. 이 모두 그분들이 견뎌낸 외로움의 값이라 생각한다. 가끔 고향과 사람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길든 짧든 함께 했던 모든 시간과 순간. 그 시절, 그 순간 주고받았던 말과 행동 겸손과 인간다움의 모습들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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