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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맑고 푸른 하늘로 닿는 단풍의 기운이 절정이다. 그린 듯이 아름다운 풍경이 촘촘히 이어진 저수지 길을 좋아한다. 굽어진 그 길을 갈 때마다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른다.

백세시대를 기준으로 인생의 반을 훌쩍 지난 내 나이는 자고 나면 성큼성큼 앞서가는 디지털 속도를 따라가기에 벅차다. 처음 음식점이나 카페에 키오스크가 생겼을 때도 기계 앞에서 한참을 헤맸다. 마시고 싶은 음료가 있었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양보하거나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는 사용이 익숙해져서 원하는 것을 빠르게 선택한다. 거기에 더해 모바일 앱으로 커피 주문까지 늘어났다. 주문번호만 확인 후 픽업 대에 놓인 커피를 단 5초 만에 들고나오면 되니 편했다. 직원과의 대화마저 기계적으로 돼버렸다.

남편은 디지털 사용을 힘들어하고 아예 관심도 없다. 스마트폰 사용도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키오스크를 사용해 본 적도 없다. 그런 문제는 내가 해결했기에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기술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세상과의 벽이 두꺼워지고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복잡한 메뉴를 이해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노년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어르신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사용법과 키오스크 사용법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곳곳에 있었다. 세상과 소통하려는 방법이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돼버린 현실이 씁쓸하다.

서울에 갈 때면 늘 지하철을 타곤 한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서 있어도 어쩌면 그렇게 안정된 자세로 스마트폰을 보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나는 주변을 힐끔거리며 사람들을 본다. 각자의 섬에 갇혀서 사회적 연결을 거부하는 그들의 삶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강력한 디지털이 만든 '초연결 사회'를 살고 있지만,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따뜻한 눈빛과 마주하고 이야기하며 쌓는 사람의 온기다. 아침마다 커피를 사러 들르는 편의점 주인과 인사를 나누며 시작한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날씨 얘기며 시절 이야기까지 점점 폭이 넓어지고 있다. 사람과의 마찰이 기분 좋은 아침을 선사한다. 디지털 기계와의 일방적인 통로가 아닌 상호 교감하는 시선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옆 사람을 바라보며 바람의 소리를 듣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다. 순간의 편리함을 넘어, 사람의 온기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중심에 서야 한다. 오늘, 잠시 스크롤을 멈추고 내게 묻는다. 숨 가쁜 초연결의 디지털 세상에서 내 삶의 '쉼표'는 어디쯤 있는지?

단풍잎이 흩날리며 발 끝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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