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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인·수필가

산나물을 데쳐 양념을 넣고 조무락 거린다. 음식이란 간과 양념이 적당히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 내 친구 중 간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평소 모든 일을 자기 편의대로 해버리고 남의 눈총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헤픈 웃음과 아무렇게나 내뱉어 버리는 말버릇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핀잔 받기 일쑤였다.

약속을 하고도 어기는 일은 다 반사고 부탁을 해놓고도 일방적으로 깨버린다. 또한 자기가 한 일을 금방 잊어버리고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에게 여학교 때부터 특별한 친근감을 가졌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 틈에서 단순하고 헐렁한 그 친구가 왠지 좋았기 때문이다.

결혼 후 내가 새 집을 사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에게 전해들었다면서 새 집도 샀으니 축하 해 줄 겸 남편과 함께 오겠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까지 데려오겠다고 해서 농담이 아닐까? 의심이 갔지만 믿기로 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약속 시간 맞춰 도착했으나 정작 그 친구는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연락이 없어 전화를 했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너무 멀어서 가지 않았어"하며 끊어버린다.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성격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다시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후 전화가 다시 왔다. 그때는 미안했다며 "낄낄낄" 웃더니 자기 집에 꼭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 그가 미덥지 않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겠다는 바람에 엉겁결에 약속 하고 말았다. 사과하려나보다 생각하며 지난날 실수를 덮어주기로 했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는 걸레가 들려 있었는데, 우리를 세워 둔 채 방마다 닦고 냉장고 속까지 정리를 한다. 빙~ 둘러 앉은 우리에게 남편자랑을 시작 했다. 어느 회사 영업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면서 남편이 취급하는 상품을 꺼내놓고 설명을 늘어놓더니 그 물건을 구입하라고 한다. 재산과 자식 자랑까지 침이 마르도록 했다.

나는 음식이 나오기를 한참 기다리고 있었지만 음식은 커녕 맹물 한 잔도 주지 않았다. 우리를 불러들인 것이 결국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앉혀놓기는 미안했던지 시장이 멀어 음식을 준비 못했다며 백화점에 가서 칼국수나 먹자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같이 갔던 친구들에게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더니 그곳에는 과일이며 먹을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몇 년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 동창 모임이 있어서 전화 했더니 뜻밖에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묻자 남편 하는 일이 실패해서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다고한다.

지금은 월세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면서 이제라도 동창회에 나가 친구들 보고 싶다고한다. 달라진 그의 태도를 보고 닫혔던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그럴수록 친구들 얼굴도 볼겸 동창회에 꼭 참석해"라는 말을 전했다.

어려서 부유한 집 막내로 태어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몰랐던 그에게 남편의 실패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다시 연락했다. 사업의 실패로 남편까지 행방불명되었고 아르바이트 해서 겨우 먹고 산다고 한다.

그 뒤 전화해도 다시는 받지 않는 그녀. 이제 세월이 흘러 나이 들면 그동안 쌓인 고생이 밑천 되어 철없던 지난날을 반성하고있을까? 나는 그 친구 살림이 어려워졌을 때 자주 전화 못해줬던 일이 후회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 둘씩 멀어지는 친구들…… "진정한 친구란 한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도 많다." 라는 말은 그만큼 좋은 친구되는게 어렵다는 뜻일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비춰질까? 뒤돌아 반성해본다.

이제 나이들어 나는 이런 친구가 되고싶다. 때론 다소 오해가 있어도, 약간의 변덕에도, 웃어넘길 줄 알며 말이 좀 서툴러도 맞장구쳐주면서 "껄껄껄" 웃어넘기는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남의 흉을 보아도 묵묵히 들어주고 천년을 늙지않는 주목처럼 묵묵한 베짱으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싶다.

어쩌다 밤늦게 전화해서 답답한 심정 훌훌 털어버려도 "다독다독" 조용하고 깊은 말투로 위로해주는 그런 사람이되어 끊어지지않는 인연으로 남고싶다.

마치 감성이 우주의 악기처럼 울려 서로 마음 편안해지고 모닥불 속에서 구워먹는 고구마처럼 내 우정이 서서히 뜨겁게 달궈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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