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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식

충북문인협회 회장·충북사진대전 초대작가

가을이 산자락 깊이 묻혀있다. 계절의 시곗바늘은 쉬지 않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어한다. 한여름의 싱그러웠던 추억은 어느 틈엔가 잊으려고 한다. 한번 떠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선 듯 손을 내밀어 잡지도 못한다. 시간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금강가 언덕에 터를 잡은 관어대(觀魚臺)를 바라본다. 민욱·민성 형제가 이곳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며 노는 것을 보면서 자랐던 곳이라 정자 이름을 관어대라 하였다고 한다. 충북의 누정(樓亭)을 촬영하여 전시 준비를 할 때 보았던 누정인데 오늘은 더 애듯해 보인다. 정자는 2평 규모로 작았지만 왜소해 보이지 않았다. 몸체에 비해 큰 지붕이 버거웠던지 옆구리 네 귀퉁이에 활대를 걸었다. 활대는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다란 장대를 받쳐 주는 것이다. 지붕이 주기둥 보다 너무 길게 뻗어 나와 기둥이 지붕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무너지지 못하도록 보조대로 사용한다. 활대는 보통 지대석 위에 세워 지붕을 받치도록 하는데 이 정자는 초석 위에 받쳐 놓았다.

문헌에 보면 충북에 있는 누정의 수는 150여 개가 넘게 나타난다. 그만큼 충북에도 누정이 많이 건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헌에 나와 있는 누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 소실(消失)되어 사라진 것도 있지만 새로 중건하거나 복원한 것을 합하면 140여 개가 존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누정조에 의하면 누(樓), 정(亭), 당(堂), 대(臺), 각(閣), 헌(軒)을 누정이라고 했다. 누정은 한때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유람이나 휴식공간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누정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많다. 아름다운 경치를 관망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詩)를 짓고 서로 토의하며 누정제영(樓亭題詠)을 통한 시단(詩壇) 모음을 결성하기도 했다.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는 식정정(息影亭)을 모태로 결성된 식영정시나 양산보의 소쇄원을 중심으로 결성된 시단이 그런 예다. 청주 현도면 시목리에 있는 월송정이나 중척리에 있는 지선정은 오유립이 지은 정자로 정계를 벗어나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후학을 양성하는 강학 장소로 사용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회(洞會)를 하거나 씨족 사람들이 모여 종회(宗會)를 하기도 했고, 충북 보은의 난국정과 같이 계(契)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호연지기와 무술을 연마하는 장소로서 궁터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괴산의 사호정이 그렇다. 또한 고을의 문루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로 이건(移建)한 팔영루나 금남루는 옛날 청풍부 관문(關門)이거나 청풍부 관아(官衙)의 정문이었다.

누정은 여러가지 기능을 통하여 선비문화와 산수문화를 만들어 냈다. 자연을 벗 삼아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으면서 바람과 물과 나무와 같은 자연을 품에 안고 사유(思惟)하고 싶어했던 선인들의 넉넉함에 있다. 그럼에도 세상의 관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편리성과 신문물에 중독된 현세대의 눈에 누정은 한낮 옛날 선비들의 놀이터 정도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관어대에 올라 앞을 바라보면 자연의 숨소리가 들린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이 토해내는 역동적인 물소리와, 소나무 가지를 간지럽히며 달아나는 개구진 바람과, 하얗게 물결치는 억새와, 머리 위에서 유유자적하는 구름까지 모든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삶의 활력소가 넘쳐난다. 세상에서 묻혀온 삶의 찌꺼기 하나까지 모두 흔들어 바람에 날려버리고, 가슴 한 켠에 쌓여있던 시기심과 욕심을 강물에 띄어 보내면 신선의 놀이터가 따로 있을 것인가. 바로 이곳이 신선의 놀이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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