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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

시인·화가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 지나고 첫눈 내리고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이 가까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겨울이었다가 한낮 오후가 되면 가을 분위기가 반복되는 절기다.

가끔 산행을 하다 보면 물을 만나기가 쉬운데, 흐르는 물에 눈길을 주다 보면 금방 물의 속성을 읽게 된다. 가까이 가면 저만치 가있고 다시 또 따라가면 물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 길을 걷거나 산행을 하다 만나는 물의 연속성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절로 순해지는 기운을 느끼게 된다.

바람 불고 낮과 밤이 반복되는 사이 깊은 웅덩이에 떨어진 단풍들이 수장되었다. 빛바랜 세월의 언어들이 밤새 차곡차곡 쌓였다

스치듯 걸어온 바람의 길 모두 허공이었다/ 가만가만 귀청에 와닿는 물의 숨소리/ 늦더위 가시고, 온다던 가을 더디게 오고/ 얌전한 산에는 물매화, 마타리, 구절초 피었다

아침 햇살, 소나무 잎 사이로 얼굴 내민다/ 겹겹이 쌓인 단풍, 물의 길에 함께 있다/ 그리운 것들은 다 여기에 모여있구나/ 그렇게 한 계절이 수장되어 물이 되었구나

이른 아침, 덕유산 백련사 가는 옛길을 걷는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 주는 길/ 가을 가고 펑펑 눈 내리는 겨울이 와도/ 누구에게나 내어 주는, 길 위에 길 펼쳐 있다

마음도 흐르고, 몸도 세월 따라 흐르고/ 발길 닿는 대로 물 길 따라 내가 흐르고 있다/ 낮은 대로 가만가만 흐르기도 하다가/ 웅덩이 골 깊은 곳, 잠시 쉬어가기도 하다가

2025.양선규 시집 『고요는 힘이 세다』중에서,「그리운 것들」

물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영속성이 있다. 한곳에 머물지 않으며, 쌓이고 고이면 넘쳐흐르고 언제나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몸을 낮추어 흐른다.

공자의 논어 옹아편에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는 구절이 있다. "어진 사람은 의리를 지키고 중후함을 잃지 않음이 산의 자태와 같아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막힘이 없음이 물의 성질과 같아 물을 좋아함을 비유한 말이다." 공자께서 변화무쌍한 자연의 속성을 통해 인성과 지혜의 본질을 설명한 말이다. 물은 움직이고 변화하지만 유연하며, 산은 고요하고 변함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품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자연은 아무리 성격이 거친 사람일지라도 그 성품을 온화하게 하며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지혜로움을 주기도 하고 산을 좋아하고 닮으면 중후함을 잃지 않으면서 어진 마음을 갖게 된다.

물의 길에 떨어진 낙엽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또 한 계절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다. 웅덩이 골 깊은 곳, 잠시 쉬어 가기도 하다가 다시 또 기나긴 물의 길에 나선다.

오랜 여정의 길 지나 산전수전 겪으며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세상은 아직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되돌아보면 걸어온 길 아득한데,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참 멀다.

자연과 함께하다 보면 마음 절로 숙연해진다. 자연 공부를 더 해야겠다. 교과서 공부 같은 것 말고, 물처럼 흐르는, 산처럼 의연한, 지혜롭고 어진 물과 산을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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