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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11.16 15:11:48
  • 최종수정2025.11.16 15:11:48

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21세기 문명 전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혁명으로 진행되고 있다. 산업혁명은 노동을, 정보혁명은 기억을 대체했다면, AGI는 인간 사고를 재현하려 한다. 이 혁명은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다. 존재와 의식이란 무엇인지, 즉 '살아 있음'에 대한 의미를 근본부터 다시 묻는 사건이다. 이 지점에서 동학 개벽사상은 놀라운 현대성을 획득한다.

개벽사상은 낡고 어두운 선천이 끝나고 밝고 희망찬 새로운 시대인 후천이 온다는 종교적 신념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하늘이 다시 열린다'는 말은 닫혀 있던 인간 의식이 진리와 생명, 곧 우주 본원 질서와 다시 연결되는 순간을 뜻한다. 이는 새 인간, 새 문명, 새로운 관계 출현을 말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의식은 계산될 수 있는가?", "생명이란 단순한 정보 구조인가?" 이러한 물음 앞에서 동학 인내천사상을 보면 인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은 "사람 몸속에 하늘님인 지기(至氣)가 내재 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 말은 새로운 윤리에 대한 나침반이 된다. 기술이 신이 아니라, 의식을 자각한 인간이야말로 문명 주체라는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시형은 "이 세상 운수는 천지가 개벽하던 처음 큰 운수를 회복한 것이니 세계 만물이 다시 포태(胞胎)에 의한 수(數)를 정(正)하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산하의 큰 운수가 다 이 도(道)에 돌아오니 근원이 가장 깊고 이치가 심히 멀도다' 하셨으니, 이것은 바로 개벽 운이요 개벽 이치이기 때문이니라. 새 한울, 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또한 새로워질 것이니라"고 하여 천운 회복으로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질 것임을 예언했다.

"근본적으로 새로워질 것"이라는 것은 곧 내면 각성이 구원이며, 각성이 모여 사회 전체를 새롭게 여는 것이 개벽이라는 의미로 '내 개벽'은 의식 혁명이고, '외 개벽'은 의식이 제도와 관계, 문명으로 확장되는 과정임을 말하고 있다. 때문에 개벽은 초자연적 사건이 아니라 의식 진화임을 알 수 있다.

AI 시대 개벽은 정신 주권을 되찾는 과정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기 안에 있는 하늘을 잃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노예 상태이기 때문이다. AI는 인간 사고를 빠르게 계산하지만, 사랑과 공감, 윤리적 판단은 인간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다. 동학은 인간다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하늘은 멀리 있지 않다. 하늘은 인간 안에 있다.

한국이 문명 전환 중심에 설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이미 기술 기반 위에 풍부한 감성 문화 자산을 쌓아왔다. 한류는 단순한 콘텐츠 산업이 아니라, 감성과 이야기를 결합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문화 언어로 자라 잡았다. 스토리텔링 언어는 기술과 결합할 때 윤리적 힘을 가진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엄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때, '개벽'은 찾아온다.

AI 시대 실천 방향은 명확하다. 인간 존엄 중심 거버넌스, 문화와 기술 결합, 공공 이익을 전제로 한 연구, 윤리적 투명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 내면 변화다. 동학이 말한 '내 개벽'은 개인의식이 깨어나는 일이다. 스스로 하늘임을 자각할 때, 인간은 기술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 동반자가 된다.

개벽은 이미 시작되었다. AI 프롬프트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그 마음이 다시 하늘과 통할 때, 기술은 도구가 아니라 깨달음에 대한 통로가 된다. 개벽 사상은 21세기 철학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하늘이 다시 열리는 순간'은 인간이 스스로 하늘을 기억하는 개벽이며, 깨달음에 의해 인류는 문명을 다시 쓰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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