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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태어나서 6개월 후부터 티스푼으로 이유식을 시작했어요. 모유에서 고형식으로 바꿔 가는 과정이지요. 재료를 추가하며 알레르기 반응도 살폈어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시금치와 찹쌀을 갈아 만든 이유식을 먹은 후에 붉은 반점이 올라왔대요. 지금도 시금칫국이나 나물 무침은 먹지 않아요. 몸이 먼저 반응을 하거든요.

각기 다른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수명도 다 달라요. 초등학생 때는 밥을 적게 먹는다고 엄마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어요. 푹푹 떠서 먹어야 복이 들어온다고 귀가 아프게 들으면서 자랐지요.

첫 선본 남자 집을 방문했을 때였어요. 한 상 가득 차려진 상에는 고봉밥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60년대에서 70년대 초에는 밥그릇의 크기가 지금 밥공기의 세배 정도 되었어요. 고봉으로 올라간 밥 만으로도 지금의 내 공깃밥량이 되었지요. 가위가 눌렸어요. 점심 먹고 왔다고 사양을 했더니 빈 그릇 하나를 갖다 주셨어요. 고봉으로 올라온 부분의 밥만 덜어 담았어요. 그리고 숟가락 가득 떠서 먹었더니 복스럽게 먹는다고 좋아하셨어요.

숟가락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키가 자람에 따라 숟가락의 크기도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바뀌었어요. 책임 또한 숟가락 크기와 함께 달라졌어요.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밤샘 공부를 해야 했고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진급할 수 있었어요.

선을 본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식구 수가 늘어나니 숟가락도 대·중·소가 종류별로 필요했고 숟가락 개수 또한 늘어났어요. 그만큼 우리 부부의 책임도 늘어났어요.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내 집을 짓고 나니 또 다른 욕심도 생겼어요.

여행하면서 보니 나라마다 풍습과 예절과 장례문화가 달랐어요. 여행지에서는 우리의 숟가락이 나이프와 포크와 수프만 먹는 숟가락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무덤 가까이에 있는 집이 가장 비싼 집이랍니다. 앞이 탁 트여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렇다고 합니다. 무덤도 네모반듯한 석관으로 땅에 납작 엎드려 있어요. 십자가 묘비만 아니면 그 위에 앉아서 스케치하고 싶었어요.

중국 묘는 호박처럼 동그랗게 썼어요. 중국 사람 특유의 불룩 나온 배 모양이에요. 어디가 머리고 발인지 알 수가 없어요. 개중에 묘비가 있는 곳은 알아볼 수 있었어요.

새벽에 시댁에서 전화가 왔어요. 시할아버님께서 밥숟가락을 놓으셨다고요. 장례를 모시기 전 포크레인으로 선산에 음택을 장만하는 작업을 했어요. 보송보송 흙살이 좋고 사람이 들어가 누울 자리는 주위 흙과 색이 달랐어요. 관을 넣고 가족들이 관 위에 흙을 뿌린 후 관 위에 나머지 흙을 채워 묘를 만들었어요. 머리는 위로 다리는 아래로, 머리 쪽은 시원하게 숟가락 종처럼 다듬었고 발 쪽은 흙을 높이 쌓아 따뜻하게 만들었어요. 우리가 살아서 밤에 자는 모습과 비슷했어요. 숟가락을 엎어 놓은 모습으로 묘가 완성되었어요. 우리가 숟가락으로 한평생 먹는 밥이 할아버지 음택의 흙이 되었나 봐요.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살아생전 열심히 숟가락질했구나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어요.

모두가 슬픈 기색 없이 호상이라 하니 할아버님이 참 잘 사셨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여기저기서 육개장을 숟가락으로 입에 넣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삶과 죽음이 경계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길동무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모습으로 보여요.

나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묘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차로 이동을 하다가도 아늑한 곳에 잘 모셔진 묘를 보면 그곳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필요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르게 다가오는 듯해요. 양택과 음택 모두 마련해 놓았으니 자녀들에게 짐을 덜어주었구나 싶어 마음이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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