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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기획지원부장

가수 이적의 달팽이는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속삭였다.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은 천천히 가도 좋다고 해석한다. 달팽이는 우리 삶에 느림의 미학을 말하며 살짝 긍정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언젠가 바다로 갈 거라던 달팽이가 우리 밭에 살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았다.

남편은 3년 전 처음 배추를 심었다. 작은 배추가 점점 커지며 속이 차기 시작했다. 초록색 커다란 배춧잎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도 했지만,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자랐고, 처음으로 내 손으로 김장도 할 수 있었다.

작년 가을에 밭에 달팽이가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배추가 자라면서 작은 구멍이 보이더니 점점 커져서 바람이 휭휭 드나들 것 같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두면 속이 차기도 전에 잎을 다 먹어 치울 것 같은 기세였다. 처음엔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의심했다. 과학 시간에 돋보기로 사물을 관찰하듯 눈을 크게 뜨고 배추를 이리저리 살폈지만, 어디에도 애벌레는 없었다. 대신 배춧잎 안쪽에 달팽이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얘는 왜 여기에 있담!" 하며 떼어내어 습한 숲으로 던져 주었다. 일이 늦게 끝난 어느 밤, 배추밭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집에 가려다가 깜짝 놀랐다. 시커먼 달팽이들이 배추를 사각사각 갉아 먹으며 구멍을 내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여보~여보~ 달팽이가 범인이었어. 배추흰나비가 아니라 달팽이가 다 먹어 치웠던 거야." 처음 이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은 믿지 않았다. 그 느린 달팽이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냐고 말이다. 내가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음 날 저녁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당신 말이 맞았다며 지금 달팽이를 한주먹 잡았단다. 흥분한 목소리였다.

올 추석 연휴 내내 우리 온 가족은 달팽이 특공대가 되었다. 배추에도, 서리태콩잎에도, 결명자 잎과 줄기에도 달팽이가 발견되었다. 심지어 하얗게 피어있는 부추꽃 사이사이에도 콩알보다 작은 달팽이 서너 마리가 붙어 있었고 나뭇가지에도 여지없었다. 소중한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서 딸들과 함께 밤낮없이 하루에도 여러 번 밭으로 출동했다. 통을 하나씩 들고 온 밭을 훑으며 달팽이를 잡았다. 치열한 작전을 벌이다 서울로 돌아간 딸들은 요즘은 달팽이 상황은 어떠냐고 묻는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 드디어 달팽이들이 덜 보인다고 했더니 딸들이 안심했다. 우리는 달팽이 특공대가 무서워서 피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올가을 달팽이뿐만 아니라 송충이, 종류도 많은 노린재가 호시탐탐 노렸지만, 우리 가족 특공대는 소중한 농작물을 잘 지켜냈다.

0세상의 꿈을 깨고 싶지는 않다. 세상 끝 바다로 떠난 달팽이는 느림의 미학으로 세상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믿길 바란다. 다만 배추밭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달팽이는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 초당 0.4cm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만큼 배추를 먹고 있다. 이게 삶이다. 나는 내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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