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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중앙대문예창작학과박사

기름이 또 떨어졌다. 해마다 농사를 지어 기름을 짜서 보내주시던 엄마가 그립다. 엄마는 통이 컸다.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마다 1.5리터짜리 패트병에 참기름 두 병, 들기름 두 병씩을 챙겨 주셨다.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랐다. 엄마가 주면 나는 그걸 소주병에 나눠 이웃에게 퍼 주며 썼다. 밥상 위에 반짝이던 그 금빛 기름이 엄마의 시간과 땀방울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저 엄마에게 가면 언제든 받을 수 있는 흔하디흔한 기름이라 여겼다.

엄마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나서야 나는 마트에서 기름을 샀다. 그러나 그것은 맛도, 냄새도, 색도 달랐다. 그제야 알았다. 음식솜씨 없는 내가 그럭저럭 밥상을 차릴 수 있었던 건 엄마가 주신 기름과 온갖 양념 때문이었다는 것을. 결국 나는 직접 기름을 짜기로 하고 깨를 수소문했다. 다행히 내 시 강의를 듣던 수강생 중 깨 농사를 짓는 이가 있었다. 그녀에게서 깨 한 말을 구입했다. 빈 소주병을 깨끗이 닦아 바구니에 담고 깨를 들고 방앗간으로 갔다. 가을이라 그런지 방앗간에는 고추 빻는 사람, 기름 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맡겨놓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지인의 말이 떠올라 그 대열에 서 있었다. "자리를 비우면 중국산 깨로 바꿔치기 될 수도 있어요." 나는 네 시간 동안 깨를 씻고, 볶고, 짜는 전 과정을 지켜봤다. 드디어 손에 기름이 쥐어졌다. 한 말을 짰는데, 소주병 여섯 병이 나왔다. 언니 한 병, 동생 한 병, 큰아들 한 병, 시골집 한 병, 청주 집 한 병, 그리고 한 병이 남았다.

내 손에 든 기름병을 한 참 바라보았다. 그 안엔 들판의 바람이 일렁이고, 햇살과 풀벌레 소리가 고요히 스며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봄이면 깨를 심고, 여름 땡볕 아래서 풀을 뽑고, 가을이면 익은 깨를 털고 말리고 씻고, 방앗간의 긴 줄에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자식에게 줄 기름을 얻으셨으리라. 엄마의 일 년이 그 안에 잠들어 있었으리라. 지금 엄마의 숨결은 어디쯤 지나고 있을까.' 그리움이 바람결을 타고 가슴에 일렁였다.

하늘과 땅의 경계 벌써 넘었겠지

짙푸른 바람 되어 머나먼 시간 저편,

어디쯤 날고 계시나 아득한 나의 어머니

ㅡ김나비 <연>·전문, 동인지《초월》·(2025 겨울호)

천천히 병뚜껑을 열었다.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그 향은 목울대를 지나 가슴속 깊이 스며든다. 숟가락에 따라 한 입 맛을 본다. 엄마의 따듯한 미소가 들판의 햇살처럼 입안에서 번지는 듯하다. 그리움은 기름처럼 천천히 가슴을 적신다. 오늘도 밥 위에 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며 엄마를 떠올린다. 고소한 향 사이로 오래된 햇살이 번지고, 엄마의 손이 내 밥그릇 가장자리를 스치는 듯하다. 한 해가 지나고 또 지나도, 기름을 볼 때마다 엄마를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향기로운 그 눈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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