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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11.02 16:02:31
  • 최종수정2025.11.02 16:02:31

박연수

백두대간연구소 이사장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보은군은 동쪽으로는 한반도의 대동맥인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둘러있으며, 그 중심에 속리산 천왕봉이 위치한다. 한강·금강·낙동강을 가르는 삼파수(三派水)인 천왕봉에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은 한강과 금강의 시원(始原)이며, 보은을 가로지르며 문화를 형성하였다. 고대 삼국이 치열하게 영토를 다투던 시기, 신라가 한강과 금강 유역 진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전략적 통로이기도 했다. 일찍이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수도 경주를 잇는 교통로는 경주~대구~선산~상주~화령~보은, 경주~대구~선산~김천~추풍령~영동~청산~보은으로 분수령은 화령과 추풍령이었다.

고대부터 교통로는 사람과 물자가 왕래하던 곳이며, 군대가 이동하던 통로다. 보은은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고대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로 알려져 있으며, 후백제와 고려의 세력권 싸움이 치열했던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여기에 교통로를 따라 요충지에 석축산성을 축조하여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였다.

고대의 산성을 지금의 도로를 따라 재구성해 보면 보은읍 중심에 위치한 삼년산성(三年山城)을 중심으로 19번 국도에 노고산성(함림산성)·문암산성·주성산성, 25번 국도에는 관기산성·매곡산성 등, 36번 국도에는 태봉산성·백현산성 등이 분포하고 있다. 토목공사의 발달과 함께 새롭게 길의 원형을 변경한 곳도 많지만, 보은지역은 고대의 이동통로와 흡사하게 만들어져 고대의 성들이 교통로를 따라 발달하였다는 것을 이해하기 쉽다. 특히 『삼국사기(三國史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지리지를 살펴보면, 삼년산성은 신라의 삼국통일 교두보로, 매곡산성은 고려통일의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가치가 분명한 보은의 산성들은 오늘날 대부분 주목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현재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삼년산성 단 한 곳뿐이며, 대다수 산성은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자연재난과 인위적 훼손 속에 잊혀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단순히 문화유산 관리의 미비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산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조선 초기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는 "우리는 동방 성곽의 나라다(吾東方城郭之國也)"라고 표현할 만큼 우리 조상들은 산성을 문명의 중심지로 여겼다. 성곽은 단순한 방어시설이 아니라, 경제·사회·문화가 융합되는 복합적 공간이었다.

산성은 돌과 흙의 구조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공동체의 기억과 삶이 담겨 있으며, 역사의 지층 위에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하고, 그 유산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잊혀가는 산성은 단지 문화유산 하나의 손실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단절을 의미한다. 지금이 바로, 산성의 고장 보은을 문화유산의 도시로 되살릴 적기이다. 역사는 복원될 수 있고, 문화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보은의 산성들이 그 증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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