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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 현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수련기획실장

엊저녁부터 내내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때에 맞지 않게 수확을 방해하는 비 때문에 농심은 무거워지건만 비오는 날은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새긴다. 아무튼 저 비가 그치면 나뭇잎은 더 노랗게 물들겠군. 내일까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라 나처럼 유리창에 아롱져 흐르는 빗물을 보며 생각에 잠긴 사람도 있겠고 친구랑 카페에서 느긋이 차를 마시거나 내린 비 때문에 도랑 막힌 거 뚫느라 우비입고 쓰레기 치우는 사람도 있을 테고.

빗물을 보고 있으려니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슬몃 나온다. 유행가 가사에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거라고 하더니만 나는 잘 익어가고 있는 건지. 잘 나이 들고 익어간다는 뜻의 well aging이라는 말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종국에는 5복 가운데 하나인 고종명이요, 선종하는 것이고 well dying으로 가는 것이지만, 과정을 잘 이뤄야 좋은 결과를 이룸은 우리 인간에게 자명한 이치라 잘 나이 드는 것은 잘 죽기 위한 방안이요 과정이겠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는 이사장 원장 휘하에 지도위원이라는 직제가 있다. 지도위원들은 전국 초중고교 교장으로 퇴임한 분 가운데 여력과 봉사 의욕이 있어 선배들의 추천을 받은 분들이다. 비교육계 출신 지도위원도 약간 명 있지만 거의 대부분 교육계 출신이다. 현직에 있을 때 나름 이름을 날린 사람들 가운데 선배들의 눈에 좋게 비치는 것은 동료에게 좋은 평판 받는 것 이상으로 쉽지 않으니 현직에서 모두 한가닥 하셨던 분들이다.

지도위원들은 퇴계선생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수련원의 입소교육과 찾아가는 학교 교육이라는 두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한다. 수련원에서는 수련생들을 성심껏 안내하고, 전국에 분포한 학교로 찾아가면 유·초·중·고 학교 급별로 마련된 교재를 가지고 선비교육을 전개한다. 모두들 현역에 있을 때보다도 더 긴장하여 사전 교육 준비를 완벽히 하여 교육에 임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지금까지 이룬 명성에 흠이 될까 스스로 조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분들이 퇴임 후에도 이리 쉽지 않은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위원으로 처음 들어와 피력한 다짐들이 대략 4가지 경우로 요약된다. 첫째, 퇴계 선생 가르침을 열심히 배워 자신을 수양하고 그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 둘째, 배운 것이 선생이니 퇴임 후에도 학생들을 대하는 기회와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끼려는 사람. 셋째, 퇴임 후 놀기도 지겨운데 그나마 할 일이 있다고 감지덕지 하는 사람. 그리고 극소수가 여유자금을 보태고자 강사비에 눈독 들이는 사람들이다. 이중 맨 마지막 경우는 여건 더 좋은 곳으로 일찍 떠나거나 중도 포기를 하므로 우리 지도위원들은 대부분 온전한 봉사 정신으로 모인 분들이라 하겠다. 이들의 고매한 정신으로 수련원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며, 결국 나이 들어갈수록 나를 위한 삶보다는 남을 위한 삶이 더 가치 있고 더 보람이 있다는 증좌를 보이게 된다.

수련원에서는 지도위원들의 지식과 교양을 높이고자 매달 도산선비 지도자 포럼을 실시하고 있다. 강사로 오신 전 보건복지부 장관 차교수님은 퇴임 후 well dying 주제로 전국에 지명도 높은 강사인데 우리 지도위원의 활동을 '좋은 관계 속에서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셨다. 지도위원의 존재가 well aging의 모델케이스라는 거다. 이 분의 말씀을 듣고 전국 200여 지도위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새기게 되었는데 필자는 여기에 더하여 지도위원 연찬회의 캐치프레이즈로 '나의 즐거움을 세상에 울림과 변화로' 정했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서 좋은 관계로 뜻을 모은다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공부해서 남 주자라는 말이 well aging의 의미와 통한다는 생각이며, 그렇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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