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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10.20 15:39:42
  • 최종수정2025.10.20 15:39:42

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유난히 파란 하늘이 달리는 차 앞으로 쏟아진다. 길옆에 차를 세우고 구름이 너울거리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긴 여름이 지나가는 자리에 가을이 말없이 자리를 바꾼다.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하늘은 일찍 어두워졌고,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문득 발끝에 무언가 밟혀 내려다보니, 단풍 든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무 위에서 한 계절을 견디고, 제 자리를 떠나 땅에 내려와 마침내 쉴 수 있게 된 것처럼 고요해 보였다. 어두운 하늘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요즘 들어 자주 "지금 잘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매일 매일 짜여진 일정표에 따라 수업한 후 집에 와서 씻고 누워 휴대폰을 보다 잠든다. 가끔은 그 하루가 너무 기계처럼 느껴진다. 특별한 일도 없고, 감동도 없고, 그냥 무사히 하루를 넘긴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시간은 조용히 흘러간다.

하지만 가을은 그런 나를 종종 멈춰 세운다. 참 신기하다. 여름에는 몰랐던 바람의 결이 느껴지고, 커피 한 잔의 온기가 다르게 다가온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말투도 조금은 차분해지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가을은 모든 것의 속도를 살짝 늦춰주는 계절 같다. 그 틈에서 나는 비로소 멈추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요즘은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 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려 한다. 구름의 모양이나 색, 바람의 세기를 느끼는 짧은 순간이 하루를 다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초간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의 고단함과 상처받았던 마음을 치유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의 무게를 덜어내고, 가을이 주는 위안을 만끽한다.

누군가는 가을을 쓸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쓸쓸함이 싫지 않다. 때로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주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계절이 주는 선물 아닐까 싶다. 평온한 안식처처럼 가을은 여유를 배울 수 있는 계절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천천히 익어가는 이 계절은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자연은 우리보다 훨씬 느리지만, 그 안엔 분명한 리듬이 있고 깊이가 있다.

나는 이제 여유를 '시간이 남아서' 갖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라고 믿게 되었다. 바쁜 일상 중에도 내가 잠시 멈춰 설 줄 안다면, 그 순간이 바로 여유가 된다. 서두르다 보면 놓치고 사는 것이 많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다. 주문을 걸듯 심호흡을 하며 속도를 늦춘다.

오늘도 나는 늦은 오후,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커피향이 천천히 코끝을 맴돈다. 따뜻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무 말 없이 창밖의 나뭇잎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래도 잘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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