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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죽집에 들러 주문을 한다. 메뉴를 보면서 주문을 하는 데만 한나절 걸렸다. 오랜만에 들른 죽집. 다양해진 메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리미엄 보양죽, 시그니처 전복죽, 진짜 전통죽, 건강 영양죽, 별미 해장죽, 원기 활력죽 등으로 분류된 메뉴에다가 그 아래에 나뭇가지 뻗어나가듯 각각 세부적으로 더 다양한 메뉴를 품고 있었다. 들어보지도 못하고 먹어보지도 못한 죽이 얼마나 많은지 주문을 하고도 공부하듯이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팥죽이나 호박죽 등 익숙한 전통죽을 뒤로 하고 다른 메뉴를 살펴보다가 특별한 전복죽을 주문했다.

죽집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식사 중인 사람들은 물론 포장이나 배달주문까지 있어서 30분 이상 기다려야한다는 말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겐 긴 추석 연휴가 좀 버거웠던지 죽 먹을 일이 생기고 말았다. 사실 연휴를 좀 느긋하고 여유 있고 편하게 지냈다 싶었는데 생각과 다르게 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향에 다녀오고 쉬면서 즐겨 마시던 차를 마시며 바깥 구경도 많이 했다.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서 화분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파트 정원에 있는 감나무를 자주 내다보기도 했다. 감나무 우듬지에서 단풍이 내려오는 것을 종일 보면서 이파리 뒤에 숨어 주황빛으로 물드는 감나무를 즐겁게 마주하곤 했다. 지금은 이파리가 거의 다 떨어지고 실한 감이 고풍스럽게 남아있는 감나무의 자태가 참 보기 좋아 마음에 여유와 온기가 돌기도 한다. 차를 마시며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편안했다. 그렇게 차를 마시다가 연휴에 읽으려고 책상에 꺼내 놓은 책을 읽기도 했다. 시와 동시를 양념처럼 읽으면서, 산티아고에서 보내는 응원을 듣고 싶어 꼼꼼하게 챙겨 읽기로 하고 글을 쓴 작가와 함께 출발선에서부터 함께 했다. 책을 따라 산티아고를 걷는 내내 작가가 하는 말이 가깝게 다가와 감동을 주는가 하면 힘겨울 때는 심호흡이 느껴지기도 하고 호흡이 가쁠 때도 종종 있었다. 산티아고 800㎞를 작가와 걸으며 만감이 교차하는 매 순간을 공감하고 감사하면서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애써 아껴 읽었다.

그러다가 잠시 눈을 쉬면서 무심천으로 나가 한 시간 정도 걷고 들어오곤 했다. 무심천의 멋진 가을 풍경이 더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반짝이는 윤슬에 흐르는 물소리와 가을바람 소리를 여겨들으며 걸었다.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길을 걸으며 날아오르는 참새들의 재잘거림에도 귀를 기울였다. 오가며 스치는 사람들도 반가웠다. 울타리처럼 멋지게 늘어선 가시랭이와 털이 빽빽한 수크령이 자란 길과 꽃밭을 지날 때는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무심천 꽃의 정원'에는 메리골드, 사루비아, 페츄니아 등등 아름답고 예쁜 꽃이 곱게 피었다. 국화는 막 꽃을 피우는 중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는 것은 실로 축복이자 행복임에 틀림이 없다. 연휴 중 하루는 지인과 점심을 먹고 또 무심천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긴 연휴를 제법 알차게 보낸 셈이다.

그런데 연휴를 하루 앞두고 입병이 심하게 난 것이다. 음식을 먹거나 양치가 어려울 만큼 입 주변에 수포가 심하게 부풀어 오르고 통증이 심했다. 어쩌면 통증보다도 어떻게 수업을 할 것인가 걱정이 더 앞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빨리 낫게 하려고 서둘러 약을 먹으며 연고를 발랐지만 부풀어 오른 수포가 좀처럼 사그라들질 않았다.

한국어 수업시간이었는데 러시아에서 온 남학생은 입을 보며, 초콜릿 먹었느냐고 물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여학생은, 많이 아프냐고 물으며 와서 꽉 안아주고 아프지 말라는 말도 해주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힘든 일이 있었느냐고 따뜻한 관심으로 다가왔다.

30분 넘게 기다려 사 온 죽을 작은 숟가락으로 천천히 떠먹으며 사소한 것들의 소중한 깨달음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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