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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우리 차 마시러 갈래요?'

9월이 저물 무렵 무심코 던진 지인의 제안에 가슴이 설레었다. 장소는 시내 작은 미술관이었는데 '形과 象 시간의 무게'라는 주제로 연속 전시가 열리는 중 부대행사로 작은 다회를 열었다. 전시 공간에 다탁이 놓이고 사람들이 들어오니 한결 온기가 돌아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이 다관을 예열하는 사이 낯선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차탁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사람들의 눈길이 쏠린 가운데 느리게 찻잔을 데우고 찻잎을 우려 따르는 손길은 투박하면서도 정성스러웠다. 차가 내 앞에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관 안에서 마른 찻잎들이잎으로 피어나는 모습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이렇게 찻잎이 우러나기를 기다리며 물끄러미 누군가를 바라보던 때가 언제였을까.

요즘은 누굴 만나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일상이다 보니 차와는 좀 멀어진 듯하다. 원두의 종류, 볶는 온도, 물 온도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내는 커피의 매력에 빠진 뒤 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도구들과 잔들이 집안을 채워가며 다기들은 점점 그릇장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간간히 우리 녹차나 홍차를 마시긴 하지만 최선의 차 맛을 내기 위해 정성스레 기다리던 시간은 어느 틈에 번거로운 절차가 되어버렸다. 우려내기 편하게 일회용으로 포장된 차들을 머그잔에 우려서 먹는 날이 더 많았다. 모처럼 좋아하는 전시장에 앉아 내 앞에 건네진 작은 찻잔을 드니 따스함이 손바닥을 통해 몸으로 스며들었다. 오랜 시간의 무게가 찻물로 배어든 찻잔은 가볍고 단정했다. 내게 잎 차는 무향 무취 무미에 가까워 천천히 오래 그리고 고요히 음미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존재였다. 오랫동안 차를 좋아하시고 즐겨온 분이 우려주신 차를 마시려니 추억의 앨범을 들여다보듯 차와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차를 마실 때면 늘 시간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찻잎이 나고 자라는 동안 머금었을 햇빛과 바람 그리고 비와 키우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깊은 맛을 머금기 위해 덖고 말리고 뒤틀려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이 맑은 물로 우러나 입안을 감돌 때 절로 마음이 경건해지고 고요해진다. 그래서 찻잔을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감싸 쥐게 만든다.

잎 차를 마시고 나자 커다란 찻사발에 가루차가 풀어졌다. 대나무 차선으로 빠르게 휘저어진 말차는 연두빛이 산뜻했다. 말차는 찻잎을 쪄서 말린 뒤 돌절구에 갈아 만든다. 그래서 그런지 풀 향 속에 약간 씁쓸한 맛과 표현할 수 없는 담백함이 어우러져있다. 차를 대접한 모든 찻잔은 선생님이 모으고 아끼시던 다완이라니 귀한 대접을 받은 느낌이었다.

미술관 야외 전시장에 전통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옛사람의 희원을 품은 돌장승은 더러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윤곽이 희미해지는 중이었다. 옛 기억을 안은 채 천천히 시원으로 돌아가는 돌을 보며 하루를 생각했다. 찻자리에 초대해준 벗에게 귀한 차를 내어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고왔던 하루는 세월 속에 또 희미해지겠지만 오랜 시간을 품은 것들이 내게 준 그 느낌만은 두고두고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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