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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회장

추석 목전에 날아온 비보가 황망하기만 했다. 차례상에 올릴 장을 보기 위해 분주하던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가에 미소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그를 볼 때면 웃는 모습이 근사한 유명 배우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잘 웃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운 삶의 무늬를 지닌 사람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고인은 내 성장기의 한때, 같은 지붕 아래서 보냈던 이종사촌 동생의 남편이다. 막내 이모의 맏사위인 그와 친정에서 함께 보낼 기회가 종종 있었다. 이모가 엄마를 찾아올 때마다 이모를 모시고 내려와 친정에서 함께 머물렀다. 남편과도 죽이 맞아 밤늦도록 술자리가 이어지곤 했다.

남부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철을 탔다. 긴 연휴 중간이라서인지 전철 안은 생각보다 혼잡하지 않다. 마침 자리가 나서 남편과 나는 마주 보고 앉았다. 버스와 달리 전철에서는 사유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 고인의 영혼을 위해 바치던 묵주기도를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전철 안의 풍경에 심란한 마음이 잠시 환기된다. 유리창에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생기롭다. 달리는 전철의 규칙적인 소음이 삶의 리듬처럼 들린다. 정차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출입구에 섰던 사람들이 내리고 한 무리의 인파가 밀려 들어왔다. 앳되어 보이는 한 커플이 우리 부부처럼 마주 앉았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이쪽 편을 향해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었다. 재빠른 동작으로 좌석에 앉은 연인의 순발력을 칭찬하는 듯하다. 잠시 차지한 자리 하나에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의도치 않게 정면에 보이는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 레이스 달린 긴 치마에 운동화를 신은 차림이 소박하다. 콤팩트를 꺼내 볼을 두드리며 다양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풋풋하다.

다음 정차역이 예고되자, 그들은 동시에 일어나 손을 맞잡았다. 출입문 앞에서 잠시 기다리던 그들이 서로 마주 보고 가벼운 입맞춤을 한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신선한 충격이다. 부끄러움을 자아내지 않는 그 투명한 장면이 생의 빛깔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충만한 사랑의 에너지를 내뿜는 그들이 잠시 망각했던 내 목적지를 상기시킨다. 생生은 이토록 싱그러운 빛으로 서로를 밝히는데….

때때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타인의 영원한 부재 앞에서 삶을 관조하는 아이러니를 반복하는 것이다.

'살다'의 명사형인 '삶'은 생명 유지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살다'는 몸의 따뜻한 기운이 유지되는 상태를 뜻하고, '삶'은 그 온기가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고 챗GPT가 알려준다. 산다는 건 온기를 나누는 일이라고 해석해 본다.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삶이란 생각이다.

내게 부음을 전했던 가족으로부터 고인의 사인을 묻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다. 궁금증이 없지 않았지만, 유족의 뜻을 존중했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10월쯤 마당의 감이 익을 무렵 어머님 모시고 올게요."라고 했던 그 말이 어두운 밤 허공으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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