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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논설위원

올해는 개천절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10월 10일 금요일에 하루연차를 낸다면 자그마치 열흘간 쉴 수 있으니 유급휴가를 누리게 된 직장인들은 복권에라도 당첨된 기분일 게다.

그런데 이처럼 긴 명절 연휴를 설렘은커녕 공포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귀성 포비아, 명절 포비아 증상이다. 몸에 익지 않은 가사노동이나 사람멀미 등으로 생활패턴이 깨지면서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지라, 안타깝게도 가족이 모이는 명절 뒤에 포비아(phobia)란 단어가 붙게 됐다.

이제는 대중의 귀에 제법 익숙해진 단어인 포비아(phobia)는 공포증을 이르는 말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까지 확대하여 두려워하는 병적 증상으로 자기 통제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어 두려움에서 포비아가 유래됐는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공포의 신 포보스의 파생어다.

포브스는 군대의 신 아레스와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태어났다. 데이모스와는 쌍둥이 형제로 두 형제 모두 두려움을 관장했다. 포보스의 두려움은 공포(Fear), 데이모스의 두려움은 염려와 걱정(Dread, Terror)으로 번역된다.

굳이 구분하면 포보스가 상징하는 두려움은 전쟁이나 긴박한 상황에 노출됐을 때 겪는 공황과 혼란, 데이모스의 두려움은 전쟁이나 미지의 상황에서 닥치게 될 위험에 대한 막연한 염려를 의미한다.

어떤 대상을 피하고 싶거나 무서워하는 마음이 모두 공포증은 아니다. 특정 현상에 대한 포비아를 가진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참혹한 현장에 혐오하는 것을 넘어 신체적인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이 단계라면 치료가 필요한 포비아로 진단한다.

명절 포비아를 가장 많이 겪는 집단이 대한민국 며느리들이다. 명절 한 달 전부터 소화가 되지 않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점점 명절이 가까워오면 불안하고 우울하다. 당연히 밤잠도 설치게 된다. 모두가 명절에 겪을 가사노동 등에 대한 스트레스성 반응이다.

남편들도 명절 포비아를 느낀다. 기혼여성 81%, 기혼남성 74%가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조사결과대로 사위와 아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남성들의 스트레스 역시 만만찮다. 장거리 운전과 교통비, 가족용돈, 추석 선물 등의 경비가 부담스럽다는 대답이 많았다. 명절 내내 아내와 양가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것은 덤이다.

명절 포비아 증상은 만성피로와 우울증, 소화불량, 두통, 불면증, 전신 몸살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연휴 일주일 전부터 생기기 시작해 명절 후까지 혐오의 감정이 동반된 신체 통증이 이어진다니 예사롭게 넘길 증상이 아니다.

요즘에는 젊은 부부뿐만이 아니라 자식, 손주들을 맞아야 하는 노부부의 명절증후군도 심각하다. 조용히 지내다 한바탕 법석을 치르면 생활의 리듬이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다. 예전의 부모처럼 앉아서 심부름을 시키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면 뒤치다꺼리에 힘이 든다. 그래서 자식이 찾아오면 반갑고, 돌아가면 더 반갑다는 말에 모두가 무릎을 치며 웃는다.

명절에 모이는 가족의 수가 줄고 장만하는 음식의 양이 따라 줄면서 가사노동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일도 줄었다. 하지만 명절 포비아를 외치는 짜증스런 외침은 몇 배 더 늘었다. 무조건 명절 치르는 일이 싫다는 증거다. 일 년에 겨우 몇 번, 명절에나 만나는 가족이 부담스러워 병이 날 지경이라면, 그 마음이 가장 두려운 포비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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