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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9.30 14:41:36
  • 최종수정2025.09.30 14:41:35

이은일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첫 수필집의 교정지가 왔다. 하나하나 교정을 해나가다 보니 글의 단단하고 성글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드는 글도 있지만, 더 다듬어야 할 어설픈 글도 여럿이다. 이대로 책으로 엮어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어떤 글에든 속속들이 내 모습이 들어있어 마음은 애틋하다. 지난 삶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자서전 같다고나 할까. 평생의 이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우리 집 거실에는 박달나무 탁자가 있다. 6년 전 집을 리모델링 했을 때 동생이 선물해준 것이다. 전체적인 형태가 약간 굽고 가장자리는 나무 모양을 그대로 살려 표면만 매끄럽게 다듬었다. 한쪽으로 끝이 두 뼘 정도 갈라진 홈이 있고 그 옆에 깊은 옹이가 있다. 옹이 근처는 검은색에 가깝게 진하고 짙은 갈색 줄이 모여 기하학적인 무늬를 이루고 있다. 옹이는 왜 생겨난 걸까? 그때 이 박달나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특하게도 박달나무는 큰 상처를 품어 안아 아름답게 변화시켰다. 나이테에 따른 무늬와 색도 불규칙하지만 조화롭다. 한 나무가 살아온 이력이 통째로 들어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탁자라고 생각하자 더욱 애정이 간다.

고다 아야의 책 『나무』에서 편백나무 이야기를 읽었다. 편백나무는 목수가 대패질하고 남은 톱밥조차 손에 들고 버리기 아까워할 만큼 버릴 게 없는 좋은 목재라고 한다. 그런데 외형은 비슷해도 목재로써는 곧게 자란 나무와 비스듬히 자란 나무가 천양지차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두 나무가 한날한시에 태어나 자라다가 그중 하나가 어떤 요인에 의해 살짝 기울게 된다. 자라면서 점점 비스듬히 기울었지만, 그래서 더 줄기를 원통형으로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훗날, 운 좋게 곧게 자란 나무는 훌륭한 목재가 되지만, 비스듬히 자란 나무는 목수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낮은 등급의 목재가 될 뿐이다. 애쓰는 과정에서 성질의 변형이 오기 때문이란다. 비스듬히 자란 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짠했다. 아픈 상처를 숨기기 위해 겉으로는 더 씩씩하게 살아가는 인생사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르치는 중3 기술가정 교과서에 모소대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설계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시의적절한 예화이다. 모소대나무는 중국 추운 지방에 서식하는 나무인데 처음 싹이 트고 4년 정도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뿌리를 넓고 깊게 뻗어 성장에 쓸 자양분을 모으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다가 5년째가 되면 그때부터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시작한다. 하루에 30cm 이상 쑥쑥 자라서 6주 만에 무려 15m가 넘는 큰 대나무가 되고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이 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대신 인내하며 뻗어낸 뿌리가 모소대나무의 이력서가 아닐까 싶다.

나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말없이 모든 것을 수용한다. 상처조차 안으로 감싸 안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면서 자기만의 이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쓸모없는 나무가 있을까. 빨리 자라지 않더라도, 반듯하게 자라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가다 보면, 쉴 곳이 필요한 누군가는 그 품에 집을 짓기도 하고, 배고픈 누군가는 그 열매로 배를 채우며, 무더위에 지친 누군가는 그 그늘에 땀을 식히기도 할 터이다.

소박한 나의 첫 이력서를 앞에 두고 생각이 많다. 모소대나무처럼 촘촘하게 뿌리를 뻗지도 못했고, 엘리트 편백나무처럼 곧게 자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일급 목재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옹이와 굴곡진 무늬 덕분에 더 빛나는 박달나무처럼, 내 변변치 않은 이력도 누군가는 좋게 봐 줄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앞으로도 나무처럼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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