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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중앙대문예창작학과박사

 며칠째 목이 칼칼하다. 긁힌 목구멍에 누군가 뻘건 고춧가루 물을 들이붓는 것 같다. 서랍에 넣어 두었던 마스크를 끼고 병원으로 향한다. 혹시 코로나일까봐 걱정했는데, 감기란다. 다행이다. 전염병은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고, 햇살이 창가에 내려앉고, 꽃이 피고 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코로나를 겪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 고립된 시간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함께하는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인간은 타인과 나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건 세계와 개인의 대립이 없을 때 가능하다. 세계와 개인이 대립할 때 우리는 거대한 세계에 맞서 싸울 힘이 없다. 부조리한 세계 앞에서 인간은 한낱 흩날리는 먼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저 그 부조리를 견뎌내는 것이 전부다. 전쟁 상황이나 전염병 상황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그 순간을 좀 더 잘 견디기 위해서는 서로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이는 실존주의 작품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후문학에서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인간임을 포기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인간 존엄의 해체는 씁쓸함을 맛본다.

문득 책꽂이에 꽂혀 있는 까뮈의 『페스트』를 살며시 꺼내 펼친다. 이 책은 전염병이 퍼진 알제리 오랑을 배경으로, 봉쇄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의 태도와 연대, 그리고 고독을 그린다. 소설은 대체로 인물들 간의 갈등은 없다. 서로 연대하여 페스트와 자연에 맞서 싸운다. 결국 자연과 인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어쩌면 싸운다기보다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서로 다독이며 기다린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우리들의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나약하여 연대만이 살길이며,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한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의사 리외는 이렇게 적는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수십 년 동안 우리 주변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언젠가는 또 인간의 불행과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 쥐들을 깨워서 어떤 행복의 도시로 몰래 넣고는 그곳에서 죽게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 부분은 중남미 환상소설(깃털 베개)의 결말 혹은 요즘 스릴러 영화의 결말을 보는 듯 여운을 남기며 여지를 둔다. 재앙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또다시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재앙이 닥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은 전쟁의 불길 속에 있으며, 우리는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서 서로를 붙들며 오늘을 살아낼 수밖에 없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을. 눈을 감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글귀를 가만히 읆조려 본다. 카르페디엠! 오늘을 붙잡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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