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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3.12 10:23:31
  • 최종수정2026.03.12 10: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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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정원 대추나무에 열린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 이수안 시민기자
수확을 마친 복숭아 과수원으로 들어선다. 지난 계절의 폭염을 묵묵히 견뎌낸 복숭아나무. 어느 해보다 달디단 맛의 복숭아로 농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 나무들이다.

무겁게 달고 있던 열매를 다 떠나보내고 나무만 남은 과수원이 쓸쓸하다. 자식들 다 떠나고 노부모만 남은 고향집의 적적함이 과수원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이 쓸쓸함은 인간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오해일지도 모른다. 나무는 그동안 자신의 모든 양분을 열매에 쏟았다. 힘겨운 숙제를 마친 지금, 이제 자신을 위해 삶의 모든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지금부터 저장한 양분으로 겨울을 나고, 그 힘으로 내년 봄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과수원을 나와 동네 길을 걷는다. 옆집 정원의 대추나무에도 가을이 깃들고 있다. 가지마다 매달린 대추가 살구만큼 굵었다. 몸은 다 키웠으나, 성숙한 대추가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앞으로 초록빛이 옅어지다가 천천히 붉게 물들면서 알알이 달콤한 대추로 익어갈 것이다.

완전한 대추를 향해 하루하루 익어가는 대추에서 내 모습을 본다. 세월은 켜켜이 쌓였건만, 마음 깊은 곳은 아직 무르익지 못해 종종 머뭇거리는 나. 더 많은 햇살과 바람을 받아야 비로소 제 빛깔을 내는 대추처럼, 나도 아직 여전히 익어가는 과정에 있다.

나무들의 삶을 보면서 생각한다. 사람도, 자연도, 제 속도대로 익어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재촉할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과정. 그리하여 서두르지 않고, 지금 내 발걸음이 향하는 길 위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안의 가을을 맞이해야 한다.

가을 초입에 서서 나 자신에게 작은 인사를 건넨다. "잘하고 있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에 스며드는 햇살이 오늘 하루를 더 빛나게 한다. / 이수안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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