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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9.22 15:54:29
  • 최종수정2025.09.22 15:58:20

이철호

소월문학관 이사장

러시아에 있는 어느 구둣방 앞에 삼도마차 한 대가 다가와 멈췄다. 그 마차 안에서 값진 모피 외투를 차려 입은 건장한 신사가 내리더니 구둣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하인이 들고 들어온 값비싼 가죽을 구둣방 주인 앞에 내놓으며 명령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 가죽으로 내 발에 꼭 맞는 장화를 만들어 주게. 그런데 이 가죽으로 장화를 만들되 1년이 지나도 새것처럼 멀쩡한 장화를 만들어야 하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네를 감옥에 처넣겠네. 그러나 그때 가서도 새것으로 멀쩡하면 품삯으로 10루블을 주지."

이 말에 구둣방 주인은 망설였다. 자칫하다간 돈도 못 받고 감옥에 들어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곁에 있던 미하일이라는 솜씨 좋은 직공이 그 일을 맡아서 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둣방 주인은 그 일을 맡아 미하일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 신사가 발의 치수를 재고 돌아가자 미하일은 신사가 맡긴 가죽으로 장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었을 때 신는 슬리퍼 비슷한 신발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구둣방 주인은 기겁을 했으나 미하일은 태연히 그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마차 소리가 나더니 아까 신사와 함께 왔던 마부가 황급히 구둣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젠 장화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주인 나리께서 좀 전에 집으로 가시다가 마차 안에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마님께서 장화 대신 죽은 사람이 신는 신발로 만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 구둣방 주인은 깜짝 놀라며 미하일에게 "자네는 아까 그 신사가 가다가 죽을 줄 알았단 말인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미하일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원래 하느님의 천사였는데 죄를 지어 이 땅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보니까 그 신사 곁에 곧 죽게 된 사람들을 데려가는 천사가 서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신사가 곧 죽을 줄 알고 죽은 사람이 신는 신발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것이다.

1년 동안 신어도 새것처럼 말짱한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했던 그 신사는 그날 자신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곧 덮칠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한 치 앞 자신의 운명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은 오랫동안 살 것처럼 아주 튼튼한 장화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어쩌면 이 신사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교통사고를 비롯한 각종 사고와 암과 같은 질병 등으로 언제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자신에게도 덮칠지 모르는데,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신사가 어리석다거나 불쌍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나 자신이 바로 그런 어리석거나 불쌍한 사람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왜 사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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