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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어떤 나라든 항상 끝을 딛고 시작한다. 새 나라 조선 역시 끝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유교적 이상 국가를 꿈꿨다. 유교 사상이 무언가.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이를 이루기 위해 고려의 기반을 딛고 새로운 나라를 펼치기 위한 체계적 운영을 꾀했던 것 같다. 이때 활용된 미술 분야가 도자공예, 시와 그림, 불교 조각이다. 이번 새 나라 새 미술:〈조선 전기 미술〉전시는 조선의 색을 구현하기 위한 여러 과정이 펼쳐져 있다.

맨 앞자리에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이 놓여 있다. 고려 상감청자에서 본 듯한 푸르스름하면서 회빛. 아담한 사리 그릇에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스며든 것 같다. 고려말과 새로운 조선의 빛이 혼합된 듯한 자유와 생명을 품은 색, 조선 전기의 색이 아니었을까.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등에 업고 태조(太祖) 자신이 직접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의지를 미륵불에게 기원하는 도자다. 어찌 보면 도자 문화야말로 조선 전기 유교적 이상의 한 표상이었음을 암시했던 건 아니었을까.

사실 조선 전기 200년은 국가 주도의 자기소 139개소와 도기소 185개 소를 운영할 정도로 역사상 가장 다채롭고 역동적인 도자 문화를 펼친 시대였다. 민간에선 실제로 제사, 군사, 예절, 결혼, 손님맞이, 장례 등에서 예절을 중시했고 도자기 그릇을 사용했다. 분청사기 경우 왕실과 관청에서 관요 백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더 이상 공납분청사기를 만들지 않게 된 지역 가마에서는 새로운 분청사기를 만들었다. 이때 가장 애호된 무늬는 모란과 물고기,넝쿨, 연꽃등이었는데, 고려 상감청자를 이은 상감 분청사기와 공납 체제와 맞물려 발전한 인화(印花)분청사기와는 다른 미감으로 다가왔다.

다음으로 유교의 핵심 내용이 담긴 시와 그림 분야다. 글과 그림에는 인문 정신과 사상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정도전은 시.서.예.악을 인문으로 보았고 인문에는 도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 인문은 무언가. 인간다움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이 인간다움의 길에 유교의 사상인 인의예지가 주를 이룬다고 보았다. 조선 전기는 이런 사상을 그림에서 의도적으로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전기의 그림은 거의 산수화가 주를 이룬다. 그래선지 〈사시팔경도〉〈산수도〉〈동자견려도〉〈소상팔경도〉의 공통된 특징은 자연이 한쪽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고 사람의 모습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거대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 그리고 자연의 순리와 그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길을 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불교 정책을 제한했던 새 조정에서 오히려 불교 미술을 발전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불교는 오랜 시간,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신세계에 여전히 강력하고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유교가 통치 이념이라해도 부처를 향한 마음이 달라질 리 없었다. 새 조선의 위정자들은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불교의 한결같은 마음과 유교의 인문 사상을 접목 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정치를 꾀했던 것 같다. 부처를 통한 심신의 안정과 존경스런 이미지의 금색을 사용해서 제작하고 발전시켰다. 모두 마음과 닿아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새것, 새롭다는 건 설렘과 기대가 따르지만, 하루아침에 뚝딱 나오는 건 없다. 새 나라 새 조선 미술도 그랬다. 처음부터 흰색으로 빚어 진 게 아니라 여러 과정과 빛의 반전이 있었다. 그 바탕에 인문 정신이 새겨있다. 그래서일까 조선의 미술에서는 귀티가 난다. 인의예지를 바탕으로 시서예악을 통한 고매하고 겸손한 인간의 향기다. 이 향기를 미술을 통해 맡을 수 있음은 고려말의 과거와 당시 새 조선이 끊임없는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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