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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전)청주시평생학습관장

결혼할 때 장만했던 그릇이 있습니다. 하얀 바탕에 작은 꽃무늬가 고운, 오래도록 간직해 온 그릇이었지요. 이사를 할 때마다 흠이라도 날까 조심스레 싸서 옮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예쁜 자태를 갖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손이 닿지 않는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릇장 깊은 곳에서 주인이 찾아줄 날만을 기다리다 아마, 본연의 임무마저 잊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애초에 선택받을 때부터 그려왔던, 맛있는 음식을 담아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며칠 전, 그 그릇의 새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에 평소 즐겨 다니던 기증센터를 방문했습니다. 가는 길에 행여나 상처가 날까 조바심이 밀려왔습니다. 손에서 놓기까지 잠시 망설임은 있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진다고 다 내 것이 아닐지도 몰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지금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마음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릇이 새로운 집에서 다시 쓰일 상상을 하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릇을 보내며, 오래된 것과 헤어지는 것을 배웁니다. 미련인지 연민인지 어떤 마음인지, 마음 한 자락도 함께 정리해 봅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래 담아둔 생각 하나가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혹시 마음도 비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옳다고만 고집했던 말들, 내 기준으로 판단했던 감정들, 그것들이 때론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물이 되어 들어왔습니다. 그릇이 흘린 무게보다, 나의 고집이 만든 무게가 더 크지는 않았을까. 이제는 고집이 아닌 아량으로,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 생각만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펴볼 줄 아는 여유를 갖고, 누군가의 말보다 먼저 그 눈빛을 이해하고, 억지로 다가가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릇 하나를 보내며 배운 마음의 정리. 버림이 아니라, 더 좋은 곳에서 더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려놓는 일. 삶도, 관계도, 마음도 모두 그러하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빼곡히 답답함이 가득했던 그릇장이 편안한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채우려 하기보다는 비우는 연습을 하다 보면 그릇장처럼 편안한 마음을 누리겠지요.

오늘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릅니다. 계절이 바뀌는 걸 알려주듯 바람도, 햇살도, 나뭇잎도 제 할 일로 바빠졌습니다. 어쩌면 이 계절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도 '비워야 채울 수 있다'라는 것이 아닐까요?

바람이 스며든 자리에 햇살이 머무는 오늘, 나도 누군가에게 가볍고 따뜻한 마음 한 그릇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떠나보낸 마음과 물건이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과 위로가 되어 돌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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