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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사소한 말 한마디, 예고 없이 들이친 찬바람에 삶 전체가 기울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힘겨운 날, 끝끝내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들녘에서, 젖은 골목 어귀에서, 부서질 듯한 마음을 부여잡고 걷던 그 길에 누군가 함께 있었기에, 모든 날은 찬란하게 빛났다.

함께 있음은 단순한 동반이 아니다. 말 없어도 마음이 닿는 거리, 손끝만 스쳐도 온기가 느껴지는 관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안도. 그것은 존재 자체를 붙들어 주는 힘이며, 삶 중심에서 필자를 버티게 하는 조용한 힘이 되어 주었다. '연기' 사상은 모든 존재가 인연에 의해 발생하고, 서로를 떠받치며 존재함을 말한다. 이는 우주 모든 것이 독립된 실체가 아닌 관계적 실존임을 전제한다. 혼자 존재하는 사람은 없으며, 존재는 언제나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살다 보면 삶이 무너지는 날이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이별과 병, 설명되지 않는 불안. 하지만 때때마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 말없이 등 두드려 주던 손, 미지근한 물을 건네던 손, 밤새 옆에서 깨어 있던 그림자. 이런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서 더 환해지고, 눈부신 빛으로 남는다.

기억을 되짚다 보면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마주했던 얼굴들.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들. 그 얼굴들이 결국 삶 전체를 구성한다. 하루하루가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큰 희망이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숨 쉬고 있는 사람으로 존재함이었다.

생존과 안전, 정체성과 의미는 관계 안에서 확보된다. 공동체라는 이름은 해체되었지만, 사람은 여전히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연결되어 있을 때만이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누군가 안부를 궁금해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 손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흔적일 것이다.

인생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한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외로웠지만 사랑이 있었다고. 고통과 기쁨은 언제나 공존하며, 그 안에 묻혀 있던 작은 연대 순간이 삶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함께 걷던 낮은 산길, 서로 기대던 비 오는 날 정류장, 웃음 터졌던 식탁 등 평범한 날들이 사실 가장 위대한 순간들이다.

아프고 감정이 무너진 날, 마음이 닫힌 날. 그날을 잊지 않게 만든 건 누군가 말 대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곁을 지켜주던 눈빛. 묵묵한 존재감은 결국 삶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 다시 살아가게 한다. 다시 사랑하고, 누군가를 걱정하며,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살아가게 만든다.

눈부셨다. 모든 날들이. 햇살이 찬란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은 우산을 같이 썼고, 눈 내리는 밤은 등을 감싸 안았다. 무너진 마음 곁에 앉아 끝내 울지 않던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었다. 그 사람이 있었기에 무너지지 않았다. 삶은 그런 순간들 총합이다.

함께 웃었던 시간, 서로를 지켜보던 시선, 조용히 건네던 손.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삶이라는 깊은 호수 아래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은 필자를 살아가게 한다. 사람은 함께 있을 때 덜 불완전해질 수 있다. 혼자서 닿을 수 없는 자리, 홀로 넘을 수 없는 강. 그것을 건너는 유일한 힘은 곁이며 함께 있음이다.

그러니 오늘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묻는다. 괜찮냐고. 그리고 답이 없더라도 곁에 앉아 있는 일. 그것이 눈부신 하루를 만드는 방식이다. 고된 하루를 건너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고, 삶이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는 이유. 그 모든 이유는 곁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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