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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두 해를 신은 여름 운동화 굽이 살짝 삐딱하다. 신발은 주인의 습성을 닮는다는데 내 걸음이 반듯하지 않은 모양이다. 보기 싫으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궂은 날이나 무더운 날도 함께 걸어온 길이 새겨있기 때문이다. 새 신발도 주인도 처음 만나면 잠시 낯설다 사람이 걷는 모양새 따라 신발 굽이 닳고 차츰 그 발에 맞게 모양이 변화하며 서로 편안하고 친밀해진다. 오래 신은 신발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낡아도 자꾸 꺼내 신게 된다. 신발만큼 개인적인 것도 없다. 길이는 물론이고 발등의 높이나 발볼의 넓이, 발바닥 모양 등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어야 편하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고 발이 피곤하다. 같은 모양 같은 치수라도 신은 사람에게 길들여지며 지문처럼 각기 다른 모양을 갖는다.

그런데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도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결혼 초 어느 겨울날 출근하려는데 시아버님께서 어른들이 신는 시커먼 새 고무 털신을 내미셨다. 차가운 날씨에 얇은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며느리가 마음에 걸리셨나보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털신을 들여놓았다가 주신 것이다. 웃음이 터졌지만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동네 언덕까지 털신을 신고 가 구두로 바꿔 신었는데 사실 털신이 너무 따뜻해 보는 눈만 없다면 벗고 싶지 않았다. 커서 뒤꿈치가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집이 안 보이는 언덕까지 걸어가 바꿔 신던 털신, 아버님께서 분홍 끈으로 리본을 매어두신 그 털신은 아버님 장례식 때 잃어버렸다. 그 따스한 기억이 그리워 얼마나 서러웠던지.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도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도 하루 하루를 잘 견디는 소녀가 나온다. 1997년 이란의 마지드마지디 감독이 제작한 영화인데 초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알리는 심부름으로 여동생 자라의 구두를 수선하러 간다. 그런데 감자를 사기 위해 잠시 구두를 놓아둔 사이 넝마주이가 주워가는 바람에 신발을 잃어버린다. 어려운 형편에 차마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고 남매는 알리의 낡은 운동화를 번갈아 신기로 한다. 오전반인 알리는 수업이 끝나면 늦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하고 오후반인 자라는 늘 오빠가 오기까지 마음을 졸인다. 자라는 학교 운동장에서 자신의 구두를 신은 소녀를 발견하지만 그 소녀가 쓰러져가는 집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아빠를 보살피며 사는 모습을 보고 구두를 돌려달라 말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는 지역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3등 상품이 운동화였기에 동생에게 선물하려면 꼭 3등을 해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경쟁에서 자신도 모르게 1등을 하고는 좌절한다. 달리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남매의 일상은 내내 마음을 조리게 했다. 자기보다 어려운 친구임을 알고 구두 찾기를 포기하는 어린 소녀의 마음 덕에 자라의 낡은 구두를 신은 소녀도 행복했을 것이다. 때 묻고 헐렁한 운동화를 신고 학교를 향해 달려갈 때 작은 발이 빠져나올 듯 신발에 걸려있던 모습이 위태롭기도 했는데. 서로를 배려하는 남매의 마음이 참 아름다웠다. 영화지만 새삼 그런 마음 씀이 그립기도 하다. 신발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이제 신화가 된 듯하다.

요즘은 기능성과 패션을 고려한 다양한 신발들이 등장하면서 신발도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다. 가끔 음식점에 가면 신발장에 붙어 있는 문구가 있다. '신발 분실 시 책임지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신발장에 넣으면서도 내심 편치만은 않다. 무언가 불합리하다. 타인의 삶이 깃든 신발에 내 발을 얹는 일도 유쾌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가을 운동화를 꺼내보니 바닥이 맨질 맨질하다. 이번에는 어떤 신발을 신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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