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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9.10 15:17:57
  • 최종수정2025.09.10 15:17:57

김춘자

수필가

친구와 함께 메밀 씨를 심기로 했다. 안 하던 일을 하는 것이라 팔목에 붕대를 감고 허리에도 보호대로 중무장을 했다. 날이 너무 뜨거워져 낮에는 열기를 감당할 수 없어서 해가 뜨기 전에 일을 마치기로 하고 서둘러 밭으로 출발했다. 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 오기 전이라 이랑조차 보이지 않았다. 너무 깜깜해 차의 라이트를 켜서 밝히고 일을 시작했다.

내가 앞에서 메밀 씨를 뿌리면 친구는 뒤를 따라오며 갈퀴질로 씨앗을 흙으로 덮어 나갔다. 손발이 척척 맞아 우리는 세 시간 만에 일을 끝냈다. 남편은 밭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물고를 만드느라 따로 밭에 남았다.

일을 마친 나는 신발과 발을 씻으며 '이 나이에 평생 안 하던 일을 해야 하냐' 는 푸념에 친구는 호사스러운 말을 한다면서 타박을 했다. 제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복이고, 안 쓰던 근육을 쓰니 오히려 운동이 되지 않냐며 한 수를 둔다.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남편은 친구에게 장정 두 사람 몫을 한다며 칭찬을 했다. 친구의 일하는 모습이 어른이라면 나는 초등학생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친구는 일을 잘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큰한 해장국으로 출출한 속을 달랬다. 이열치열이라더니, 땀을 흘리고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니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차 안에서 친구는 메밀 씨가 부족하여 남겨진 빈 밭이 아깝다며 들깨 모를 심어 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들깨 모 네 판을 사서 트렁크에 싣고, 친구와 사곡리로 출발했다. 오늘은 날이 훤하게 밝아져 밭이랑이 뚜렷하게 보였다. 60㎝ 간격으로 호미로 콕 찍어 흙을 파고, 판에 있는 들깨 모를 두엄째 뽑아 흙 속에 넣어 심어 나갔다. 친구가 두 골을 심는 동안 나는 겨우 한 줄을 따라갔다.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호미가 흙을 찍는 소리는 마치 비둘기가 부리로 모이를 콕콕 쪼는 듯 리듬을 타며 소리를 냈다. 친구는 들깨 모에게 '튼튼하게 자라 많은 들깨를 내줘' 하고 말을 건넸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큭큭 웃음이 났다. 식물에 말을 걸어주는 친구의 그 마음 씀씀이가 참 따뜻했다. 친구의 따뜻함은 이 밭을 살찌우는 힘이 될 것이다.

8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뜨끈한 뼈다귀 감자탕으로 해장을 하고 헤어졌다. 햇살은 다시 머리 위로 뜨거워졌지만, 마음은 후련했다. 그리고 몸은 솔직했다.

옛 어른들이 달밤에 체조한다고 하더니만, 연달아 이틀을 달밤에 메밀을 심고 들깨 모도 심고 하며 새벽부터 안 하던 일을 했더니, 속은 후련한데 몸이 통증에 여기저기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호미질했던 손목은 시큰거리고, 몸살이 올 것처럼 근육이 욱신거렸다. 병원에 가서 영양주사를 맞다가 혈관이 터져 팔에 퍼런 멍까지 들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사서 먹는 게 훨씬 싸다는 것은 알지만, 친구는 용돈 벌이를 하고, 우리는 농사지은 들깨로 기름을 짜서 나누고 가족의 건강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내 손으로 지은 농산물을 먹는다는 자부심마저 생겼다.

창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들깨 모가 잘 자랄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혹시 비 피해로 이재민이 생겨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농사가 사람의 손만으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친구와 함께 땀 흘리며 웃던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이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의 고단함조차 그리운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 밭에 가보니 메밀이 듬성듬성 보이고 아직도 많은 씨앗은 흙 속에서 잠을 자는 중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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