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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가끔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지인이 있다. 그녀와의 관계는 순수하다. 펑소 서로 깊은 친분을 위하여 별다르게 애도 안 쓴다. 그냥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다음 만날 날을 기대하는 그런 사이다. 이런 관계는 그녀나 필자나 성향이 담백하기에 가능한가 보다.

사실 필자의 단점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친화력이 결여 됐다고나 할까. 타인 앞에서 마음에 없는 말로 너스레도 떨고, 때론 아부도 곁들여야 하는데 이것엔 서투르다. 그녀가 필자를 좋아하는 게 바로 이런 점이란다. 이런 성향은 천성이니 고칠 방법이 없다. 요즘처럼 달콤함에 길들여진 현대에 쓰디쓴 바른 말이나 툭툭 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랴. 젊었을 땐 솔직히 그랬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걸핏하면 무익한 일에도 오지랖을 펼쳤다. 요즘은 어떤가. 좋은 게 좋다는 우유부단함 쪽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이는 충언이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드릴 사람이 별반 없을뿐더러, 괜스레 타인 일에 나섰다가 외려 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럼에도 충언을 고맙게 받아드린 대통령이 있다. 1998년 11월 21일 청와대 한미 정상 회담 때 일이다. 회담장을 막 나가려는 빌 클린턴(Clinton)미 대통령을 당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불러 세웠다. 그리곤 클린턴 대통령을 그곳 창가로 데려간 김대중 대통령은 낮은 음성으로 나지막이 말을 했다.

"정치인은 큰일을 하다보면 여러 일을 겪습니다. 당신은 미국의 재정적자를 줄이고 경제의 틀을 튼튼히 이룬 미국 영웅으로 국민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역경을 잘 이겨내십시오."

라고 말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5- 1996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실이 알려진 상태였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던 처지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매우 심란했나 보다. 한미정상 회담차 서울에 내한해 묵고 있던 호텔 숙소에는 밤마다 술병이 나뒹굴곤 했다.

그 후 클린턴 대통령이 다행히 탄핵 위기를 넘겼다. 1999년 7월 2일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백악관에서 김 대통령을 만난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준 것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이 덕분인지 90년 대 말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한미 양국이 페리프로세스( perry prooess)를 적극 추진하게 됐다. 그 배경엔 두 정상의 인간적인 신뢰 관계가 작용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00년 김대중 정부가 미국 몰래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 시켰다. 이렇듯 독자적으로 북한과 펼친 햇볕 정책이 못마땅했을 미국이다. 하지만 클린턴 대통령이 다방면에서 김 대통령을 배려했다. 그 결과 이일로 미국 내에서 더 이상의 파열음은 없었다.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상 외교도 어찌 보면 인간적인 순수한 관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외교만큼은 정상들 간의 관계가 곧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보다. 오죽하면 나카소네 전(前) 일본 총리는 " 외교는 손으로 빚는 수공예품'이라고 했을까. 하긴 국정이든. 개인이든 어찌 원만한 인간관계를 도외시 하랴.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명예도 부도 쌓잖은가. 그러고 보니 사람이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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