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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최초의 서양화가, 동양화로 돌아선 까닭

  • 웹출고시간2025.09.04 15:48:09
  • 최종수정2025.09.04 15:48:09

고희동 작가, 자화상

ⓒ 이동우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유럽에 알린 콜럼버스처럼 한 분야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은 최고의 명예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개척했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기에 존경과 찬사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라는 칭호를 받았으나 엉뚱하게 다른 분야에 한눈 판 작가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리우고 있는 춘곡 고희동(1886~1965)이다. 고희동은 군수를 지낸 고영철(1853 ~ )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역관인 아버지의 권유로 관립 한성법어학교에 들어가 4년간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의 프랑스어 통역과 문서 번역을 담당하는 관리가 된다.

춘곡은 을사보호조약(1905)이 체결되는 것을 지켜보다 현실 도피방법으로 그림을 시작하면서 안중식(1861~1919)과 조석진(1853~1920)문하에 들어가 동양화를 배운다. 프랑스어에 능숙했던 그는 프랑스 공사관에서 열린 전시회에 서양화 화풍을 흉내 낸 그림을 출품하기도 했다. 당시 동양화는 중국의 화첩을 베끼는 수준이었는데, 이에 환멸을 느낀 춘곡은 궁내부 시절 외국인들과 접촉하면서 보았던 서양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기회를 엿보다가 정3품이라는 높은 벼슬을 포기하고 23살 때 국비 장학생으로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들어간다. 당시 주위에서는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그림이냐며 조소했고, 일본인들은 유화를 본 적도 없었을 한국인이 서양화를 배우러 왔다고 이상하게 보았다고 한다.

그가 이때 그린 '청춘(1914)'이라는 잡지의 표지 그림은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로 기록되고 있다. 1915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춘곡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중앙고보, 휘문고보, 중동학교, 보성학교에서 미술 교사를 한다. 그 당시 휘문고보에서 만난 제자 전형필(1906~1962)에게 오세창(1864~1953)을 소개하면서 간송미술관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고희동 작가. 탁족도.

ⓒ 이동우
춘곡은 감투 욕심이 많은 미술인이었다. 해방 후에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를 조직해 회장, 1949년 선전을 본 따 만들어진 '국전'의 심사위원장을 7년간 맡는다. 그 후에는 대한미술협회 회장, 최고의 예술인만이 회원이 될 수 있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을 하기도 한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강제로 납북될 위기를 맞는다. 그는 승려로 변장해 절로 피신해 납치를 모면한다. 그의 감투욕은 미술 분야를 벗어나 정치계에도 눈을 돌린다. 1960년 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이듬해 5.16 군사 정변으로 의원직에서 사퇴한다. 춘곡은 짧게나마 우리나라 미술인 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회의원을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춘곡은 우리나라 최초로 동경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지만 10년 정도 서양화를 그리다 일본 유학 가기 전 그리던 동양화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왜 어렵게 일본까지 가서 배워온 서양화를 포기했을까 궁금해 그 이유를 알아보니 "회화예술이란 무엇인가, 꼭 서양화가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나에게 있는가, 서양화는 지금의 사회와 아주 동떨어진 예술이 아닌가, 동양화나 서양화나 그림에는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사회는 동양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그럴듯하게 합리화했지만 거기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었다.

춘곡이 그림을 그리려고 화구 박스를 메고 들로 나가면, 아이들이 화구박스를 엿판으로 알고 엿장수가 왔다고 따라 다녔다고 한다. 나중에 엿장수가 아니고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또 "왜 이런 점잖지 못한 것을 배워왔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유튜브에서 짜는 유화물감이 마치 고약이나 닭똥 같다며 웃음거리로 봤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어울릴 만한 서양화 작가들이 배출되지 않자, 결국 춘곡은 서양화에 회의를 느끼고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라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일본에서 유학해 서양화를 전공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작가답지 않게 현재 남아있는 그의 유화작품은 자화상 몇 점에 불과하다. 다시 동양화로 돌아온 춘곡의 화풍은 전통적 수묵화법에 서양화의 색채 및 기법을 절충해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했다고 하나, 필자가 보기에는 평범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남정 박노수(1927~2013)작가에게 화단의 대선배였던 춘곡은 고예독왕(孤詣獨往.작가는 반드시 개성적인 표현의 길을 개척하고 매진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렇게 외롭게 홀로 가는 작가의 길은 험하고 고독하다)이 작가의 길이니 이를 극복하고, 훌륭한 작품을 많이 그리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남정은 고예독왕을 가슴에 새기고 작품 활동에 매진해 미술사에 남는 대가가 된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을 해준 춘곡은 작품활동보다는 감투를 탐닉한 사람이다. 그래서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우리나라 미술계에 기여한 점이 크다고 하더라도.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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