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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한천초등학교병설유 교사

인터넷을 열고 검색창에 개명 절차를 쳤다.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고 반백 년을 나와 함께한 이름인데, 어찌 쉽게 결정을 했겠는가? 내 이름은 기쁠 희 맑을 숙을 썼다. 이름 덕분인지 나는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었고 기쁘게 사는 날이 많았다. 적어도 시를 쓰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이름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로 등단을 하고 나서 문제가 찾아왔다. 나보다 먼저 시인으로 등단한 사람 중에 동명이인이 있었다. 그녀는 나와 자신을 사람들이 혼동한다면서 불편을 호소해 왔다. 창작 기금을 신청할 때도 본명과 필명이 달라서 필명으로 나온 작품들이 나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매번 제출해야 했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 상황에서도 필명과 본명을 병기해야 했고, 책을 발행한 실적이 들어가야 하는 보고서에도 필명과 본명에 대해 증명해야 했고, 인세를 받는 통장을 제시해야 하는 경우도 이런 상황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아침 일찍 동사무소에 가서 개명 허가신청서를 비롯한 서류들을 떼었다. 그리고 신분증과 도장을 챙기고 인지세를 들고 법원으로 갔다. 법원은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주차 공간이 없었다. 근처를 몇 바퀴 돌다가 결국은 교육청 주차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법원 근처에 가본 곳이 교육청밖에 없으니, 당연히 그곳으로 자석처럼 끌렸다. 주차 후 초록이 무성한 두꺼비생태공원을 가로질러 법원으로 향했다. 창구의 직원이 이름을 어떤 것으로 바꿀 거냐고 물었다. 나는 한글 이름인 나비로 할 거라 했고 접수는 간단히 끝났다. 한 달 반 뒤면 완료될 거라 했다. 오랜 시간 숙고한 것이 무색하게 단 몇 분 만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법원을 나오자, 여름 햇살이 눈을 찔렀다. 손차양을 만들어 얼굴에 그늘을 들이고 걸었다. 이번에 매미가 귀를 찌르며 서럽게 운다. 미루어 왔던 일을 작심하고 한 터라 홀가분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동생의 말이 귓전에서 맴돌았다. "언니! 나비가 뭐야? 이름 갖고 장난질 하는 거 아녀? 그냥 살아!" 훗날 오늘의 나의 선택이 어떤 파장을 불러 올 지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들끓었다.

이름은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입술을 거쳐 나에게 되돌아오는 울림이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내 안에 지난 시간을 새겨 넣었다면, 앞으로 불리게 될 새 이름은 또 다른 얼굴로 나를 만들 것이다. 베르그송이 말한 시간의 '지속'처럼, 정체성은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덧붙이며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명은 과거의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간의 층을 내 삶에 더하는 선택일 것이다.

갑자기 매운 짬뽕이 땡긴다. 시간을 보니 11시다.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국집에 들어와 짬뽕을 시키고 앉았다. 티비에서 개명한 전 영부인의 구속 소식이 들린다. '그녀는 왜 이름을 바꾸었을까? 이름을 바꾼 후 인생을 후회하진 않았을까? 나의 생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설레는 날이다. 뉴스에 시선을 떼어주며 앞날을 더듬고 있는데, 짬뽕이 나왔다. 짬뽕 한 젓가락을 뜨며 생각에 젖는다. 이름은 단순한 음절이 아니라, 타자 속에서 드러나는 나의 존재 방식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주어진 것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을 통해 자기 본질을 만들어 간다. 개명은 내게 주어진 작지만 본질적인 자유의 행위다. 이제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 내일을 향해 날아가는 나비가 되기로 한다. 이미 나비의 날개는 펼쳐졌다. 나의 앞날에 긍정적인 파장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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