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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8.25 14:50:59
  • 최종수정2025.08.25 14:50:59

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공학박

루앙프라방에 갔다. 라오스 북쪽의 작은 도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사원의 황금 지붕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커다란 나무가 병정처럼 서 있었다. 거리는 금방 빗자루로 쓸어낸 듯 단정했다. 어느 곳을 걸어도 안전할 것 같았다. 호텔 직원도, 카페나 상점 점원도, 택시 기사도, 마주치는 모두가 친절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친절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의아한 기분마저 들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았다.

# 신을 닮은 도시

도시는 강과 산 사이에 있다. 메콩강과 남칸강이 만나는 곡류점에 자리하고, 한 가운데 푸시산이 우뚝하다. 이런 지형은 기가 모이는 곳으로 여겨진다. 기는 불교와 결합했고, 도시는 고요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이곳은 14세기 랑쌍 왕국의 초기 수도였다. 도심에는 서른 개가 넘는 사원이 있다. 도시는 사원의 시각 축을 고려해 건축물의 재료, 색상, 높이를 관리한다. 왕궁, 거주지, 사원이 골목을 통해 이어져 있다. 메콩강을 향해 걷다 보면 예기치 않게 열린 사원의 마당과 회랑에 들어서게 된다. 사람들의 일상이 사원과 맞닿아 있다.

사원 마당에서 마을 회의가 열리고, 명절에는 공연과 잔치가 벌어진다. 누군가 태어나고, 결혼식이 열리고, 장례식이 거행된다. 전통문화가 전수되고, 불교 강의나 명상 프로그램으로 지역 경제와 연결된다. 마을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스님께 달려간다. 스님은 상담자가 되고, 사원은 보호소가 된다.

과거에는 사원이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다. 지금도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사원에 머물며 교육을 받는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단기 출가가 가능하다. 며칠에서 수년 동안 스님으로 지내다가 환속한다. 인생의 통과의례이기도 하고, 자기 수양이나 부모에 대한 효행의 일환으로 출가한다. 사원은 승려와 사미승, 단기 출가자와 방문 수행자가 섞여 있는 열린 공동체이다. 환속 후에도 신자로서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 이 도시에서 사원은 신성한 종교의 공간이자 역사, 문화, 일상의 정령이다.

# 신을 닮은 사람들

이른 새벽, 스님들이 탁발에 나선다. 스님은 끼니를 공양에 의존하고, 신도는 공양을 올리며 공덕을 쌓는다. 신자들은 예를 갖추려 어깨에 천을 두르고 무릎을 모은다. 스님이 한 분씩 차례로 지나갈 때마다 갓 지은 찰밥을 손으로 동그랗게 빚어 스님의 바리에 올린다. 탁발이 끝나면, 찰밥과 함께 준비했던 공양의 물을 나무뿌리에 붓는다. 물은 흙으로 스며들고, 그것이 다른 생에 닿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위한 기도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한 정화 의식이다. 이 도시는 자비와 보시로 하루를 시작한다.

여기에도 체면 문화가 있다.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배려라기 보다는 자기를 지키는 방식으로서의 체면이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와 베트남전쟁 시기 미국의 폭격에 대해서도 보복보다 용서를 선택했다. 고통 속에서도 타인을 품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지켜냈다. 루앙프라방 사람들이 순수하고 친절한 이유는 자본으로부터 비껴나 있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훈련되어 온 삶의 태도이자 공동체적 삶에 기원한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게 불어난 강물이 빠르게 흘러갔다. 우기(雨期)였다. 메콩강을 바라보며 비어라오를 마셨다. 모든 사람이 친절하다는 그 기이한 사실이 납득됐다. 그리고 매료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조차 사랑스러웠다. 쓰-쓱 거리를 쓰는 규칙적인 소리가 기도처럼 들렸다. 누군가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거리는 금세 어두워졌지만, 나는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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