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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인·수필가

잔설이 남아있는 2월의 아침이다. 저 먼 밭에는 어름장같은 흙속에서도 청보리가 푸르름을 잃지않는다. 고추 농사일을 끝내고 휴식의 계절이 깊어간다. 그러나 우리부부 발걸음은 여전히 바쁘다. 마른 고춧대를 걷어낸 자리에 비닐 하우스를 짓기로 했기때문이다.

요즘 급변하는 지구의 기후변화로 비가 한꺼번에 œP아져서 고추 농사를 지을수가 없는 형편이다. 고추농가들의 그런 애로사항으로 농사일을 포기하는 집이 늘어나고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는 비 피해를 막아주기도하고, 병충해 피해가 작아서 고추 수확을 높일수있다.노지보다 고추모종을 1개월 먼저 심을수있으며 2개월 정도 늦게 수확을 할수있기때문에 대부분 하우스를 선호한다.

하우스 철거하는 날이다. 남자 5명이 3일 동안 작업을 도왔다. 10년이나 묵은 하우스라서 뜯어내는 곳마다 먼지가 풀풀 날랐다. 나는 뒷일을 도와주기위해 새참거리와 일꾼들 밥을 직접 손수 해드리기도 하고, 바쁠때는 식당에서 사드리기도했다. 그나저나 철거는 힘들게 끝냈으나 옮기는게 문제였다.

드디어 옮기는 날이 돌아왔다. 크레인과 포크레인까지 동원했다. 쇠파이프를 묶어 놓으니 크레인이 아니면 전혀 불가능했다. 우여곡절 끝에 힘들고 어렵게 옮겨왔으나 짓는게 또 문제였다. 하우스 짓는분께 맡기려 알아봤더니 3동 짓는데 천만원 가량 든다고한다.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 그런 거금을 투자하기에는 우리에겐 벅찬 일이다.

우리부부는 다짐했다. 경험도 없고 힘든 일이지만 해서 안되는일이 어디있을까? 둘이서 짓기로 결정을 내렸다. 잠시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동안 어려운 농사일 앞에서 우리부부는 서로 터득한 만큼의 지혜에 귀기울이며 힘든 일을 개척해나갔다. 서로 마음 하나 의지하며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내었다.

이번에도 꼼꼼한 남편이 앞장섰다. 마을마다 다니면서 귀동냥으로 전해들었다. 경험이 많은 농가를 방문해서 설명을 듣기도하고 때로는 들녁에 있는 하우스 안쪽을 살펴가면서 그 원리를 터득해냈다. 각종 부속품 준비는 철물점 주인이 도와줬다. 나는 두터운 잠바와 마스크로 무장했다. 남편도 겨울용 뽀빠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맘을 단단하게 굳힌다.

작업이 시작되었다. 포크레인이 고랑을 파고 하수관을 묻는다. 나는 작업자들과 힘을 합해서 연장을 챙기느라 종종거렸다. 전문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었다. 포크레인이 파이프관 박을곳에 구멍을 파주고 남편은 쇠파이프에 철고리를 연결하여 작업을 수월하게 이어갔다. 마음 속 깊은 희망의 펌프질로 오직 앞을 향해 작업에만 몰두했다. 운반기 운전과 도구 챙김은 내가 맡아서 도왔으며, 우리 부부는 한낮의 겨울 햇빛을 의지삼아 힘듦을 참아냈다. 남편은 서울 토박이라서 농사일을 안해봤지만, 이제 9년차 전문 농삿꾼이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중고 파이프라서 잘못 휘어진게 있어서 쇠파이프와 쇠고리 연결작업이 잘이뤄지지않았다. 남편이 생각에잠겼다. 한참후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밧줄을 가져왔다. 휘어진 파이프와 운반기계에 줄을 연결한 다음 기계로 잡아당겼다. 그럴때마다 그런 차분함에 박수를 보냈다.

인생의 긴 터널 같은 삶의 징검다리를 건너 낯설은 이곳으로 귀촌한 우리는, 농사일에 지친 일상을 폭 넓게 서로 도와주기도한다. 가끔 의견이 안맞아 토라질 때마다 자기 몫의 넓이 만큼 꿈을 낮추어 서로 등을 감싸 토닥거린다. 그럴때마다 비뚤어진 마음속 앙금을 가라앉혀서 매듭을 풀어내었다.

그런 노력 끝에 마지막으로 하우스 입구에 문짝 기둥 세우기 작업을 앞에 두고있다. 우수가 지났지만 찬바람은 아직도 내 볼을 애이듯 지나간다. 잔설이 남아있는 우리밭 흙이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낮에는 영상의 온도로 밭흙이 녹아내려서 장화를 신고도 질퍽거려 걷기조차 힘들지경이었다.

걱정이다. 모레부터 비 예고가 4일나 잡혔다. 비닐을 씌우려면 어서 마무리를 해야만한다. 문짝은 따로 맞춤으로 만들어 붙여야하는데~어쩌지? 쇠파이프 관을 박아서 중심을 잡아 연결하는 작업이 난감하기만하였다.

할수없이 땅이 얼었을 때 일찍부터 작업을 하기로했다. 나는 다시 두터운 털모자와 목도리로 무장했다. 그때였다.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끓여와요"

끓인물을 건네주자 미리 피워놓은 고체연료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쇠파이프가 안들어가는 그곳에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박기 시작했다. 처음엔 튕겨져버리더니 파이프 사이로 물이 스며들면서 박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둥을 세워서 문짝을 완성했다.

그 순간 둘만의 가슴 속에 작은 열정의 불이 켜졌다. 고요한 마음에 새별이 뜬다. 시련 없는 성취가 어디 있을까? 바른 생각으로 또박또박 걸어 여기까지 왔다. 나는 오늘도 하우스 안에서 내 키보다 크게 자란 고추나무에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린 상상을한다. 따내도 또 따내도 또 열리는 길쭉하고 건강한 고추를~

"꽝~꽝" 망치소리와 "털털"거리는 운반기 소리가 야산에 울려퍼진다.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니 청주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높이 떠서 날아가고있다. 겨울빛 담은 하늘에서는 저녁노을이 한낮의 태양을 삼키고있다.

오늘도 노을지는 창가에서 내면의 복잡한 생각들을 먼지처럼 털어버린다. 좋은 생각만 머리 맞대어 서로 기대며 살아가리라. 우리부부는 다시 희망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푸른 꿈이 더욱 야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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