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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여름 장마가 한 달간 지속 될 거라던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비는 짤막하게 내리고 그쳤다. 높은 온도의 뜨거운 여름 햇볕은 땅과 곡식을 태웠다. 비는 주말마다 내렸지만 워낙에 고온으로 금방 땅은 말라버렸고, 메마른 땅에서 들깻잎이며 파는 윗부분부터 서서히 갈색으로 타들어 갔다.

물기 없는 땅이 바싹 말라 흙먼지들만이 들판을 날아다니는데, 세가 강한 잡초들은 무성히 자라 시든 작물들의 그늘막이 되었다. 그 그늘에서 그나마 연명하고 있는 작물들 때문에, 그 풀들을 뽑아낼 수도 없었다.

한동안 습한 더위가 이어졌고, 에어컨에도 몸이 지치던 어느 밤에 비 예보대로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밤새도록 거세게 내렸고, 핸드폰에서는 연달아 긴급 재난 문자가 울렸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집중 폭우였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던 나는 새벽 3시가 되자 결국 우산을 쓰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논과 밭은 물에 잠겨 있었지만,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안도하며 가경천으로 발길을 옮겼다. 양쪽 천변 뚝 사이로 흙탕물이 넘실대며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제방을 넘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마음뿐이었다. 특히 가경천 하류에는 몇 년째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구간이 있어 걱정이 컸다. 지난달부터 진행 중이던 하천 정비 공사는 장비 몇 대가 천변 가까이에 머물러 있었는데, 자칫 물에 휩쓸려가면 그 손실은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장비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물은 그 틈을 비집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장비가 떠내려갔더라면 회사는 커다란 손해를 입고, 최악의 경우 파산까지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TV 속 뉴스는 밤새 일어났던 일에 대한 속보를 전했다. 산사태로 진흙은 마을을 뒤덮고 거센 흙탕물은 동네를 고립시켰고, 가축들은 물속에 갇혔다. 112 신고를 받고도 발만 동동 구르는 공무원들 그리고 그 뉴스를 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도 가뭄에 타들어 가던 곡식들과 같은 심정이었다. 사망자와 실종자의 소식은 한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그 상실감은 어떤 재산 피해보다도 크고 깊어질 일이었다.

비가 그친 다음 날, 농막에 들렀다. 마당은 누군가가 빗자루로 쓸어낸 것처럼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다. 벽돌로 시공한 것은 다행이었다. 도라지를 심은 밭에는 잡초가 다시 자라나고 있었고, 시들어가던 파와 깻잎은 놀랍게도 다시 생기를 얻어 푸른 기운으로 나풀거리고 있었다. 새삼 물의 힘을 느꼈다. 물은 생명을 살리기도, 앗아가기도 한다. 그 강한 힘은 어떤 기준도 없이 때로는 축복으로, 때로는 재앙으로 다가온다.

미호천에도 가보았다. 흙탕물이 찰랑거리며 다리 밑을 흘러간다. 수위는 높았지만, 제방을 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나라 전체가 폭우 피해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청주시는 호우주의보가 발효된 이틀간 76.4mm의 비가 내렸지만, 인명피해 없이 도로침수, 수목 전도, 도로 파손 등의 시설피해만 신고되었다고 했다. 그나마 인명피해는 없으니 다행이었다. 재난안전대책본부와 공무원의 비상 근무 등의 신속한 대응 덕분이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자연은 한순간에 모든 걸 뒤엎을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한다. 작물은 다시 자랄 수 있지만, 사람의 목숨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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