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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8.10 14:55:48
  • 최종수정2025.08.10 14:55:48

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산다는 것은 날마다 잊고 살아가는 일이다. 얼굴, 목소리, 체온, 그리고 때로는 마음까지. 누군가를 사랑했고, 누군가와 울었고, 함께 살았던 기억은 도시 소음 속에 뿌옇게 사라져가고 있다. 피도 없고, 눈물도 없는 인심 때문에 사람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때로, 잊은 줄 알았던 무언가가 문득 마음을 뒤흔든다. 바람일 수도 있고, 유치하게 흐느끼던 오래된 이별 노래일 수도 있으며,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아이 눈동자일 수도 있다. 필자는 그때 느낀다. 하늘에서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고. "너는 인간답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 목소리는, 고요하되 단호하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전통이 사라진 사회'라 불렀다. 지탱해 주던 가족은 해체되고, 인간관계는 불확실한 계약이 되며, 사랑은 영원보다 '상호 합의된 기간' 안에서 숨 쉬고 있다. 불확실성은 일상이 되었고, 안정된 삶은 더 이상 누구 전유물도 아니다.

앤서니 기든스는 『근대성 결과』에서 이 시대 사랑을 '순수관계'라고 했다. 관계란 더 이상 의무나 외부 제도에 의해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만족을 느낄 때까지만" 지속되는 그것은, 마치 조건부 평화조약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하는 만큼, 쉽게 떠날 수 있다. 가정은 공동체가 아닌 프로젝트가 되었고, 프로젝트 실패는 곧 해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필자는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인간이기를 포기한 걸까? 문학은 늘 이 질문을 품어왔다. 한강『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녀 침묵은 이 시대 절규다. 몸과 영혼, 존재 끝에서 그는 "다른 방식으로 살겠다"고 선언하지만, 그 선언은 오히려 가정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그녀가 선택한 '고기 거부'는 규범과 제도, 역할에 대한 철저한 거부이며, 동시에 '인간다움'에 대한 마지막 모습이다. 가족은 그녀를 돌보지 못하고, 사랑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파괴된 자리에 남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진실이다. 살아야 한다는,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김애란『비행운』 속 청춘은 도시 변두리 사랑 이야기이다. 기차역을 오가며, 비정규직 일터에서 기름 냄새에 물든 손으로 사랑을 한다. 하지만 꿈도, 돈도, 미래도 없는 이 사랑은 곧 무너진다. 이별은 조용했고, 해체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참담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그 아이는 한때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 주었다" 짧은 순간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아직 인간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이제 '기대지 않는 것'을 배우는 감정이 되었다. 의무보다 선택, 영원보다 지금, 가족보다 관계. 그러나 그 모든 흐름을 인정한 이후에도, 필자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울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내게 등을 돌리고 사라질 때, 뒷모습을 보면서 원망하고 싶지 않다.

내가 울 수 있다는 것, 내가 미워하면서도 기억한다는 것, 내가 해체된 가정에서조차 연민을 느낀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존엄 아닐까? 도시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득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울어라. 사랑하라. 그리고 인간이 되어라"

목소리는 다정하지 않지만, 진실하다. 필자는 그 소리를 따라 걷는다. 도시가 아무리 삭막하더라도, 그 안에서 피와 눈물과 마음으로 살아간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생각해 본다. 사랑은 실패할 수 있다. 가정도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끝내 인간다운 이유는, 그 잔해 위에서도 다시 사랑을 품으려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제도보다 따뜻함이고, 사랑이 계약보다 기도이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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