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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영화간판 그리다 불굴의 의지로 대가가 된 이상원 화백

  • 웹출고시간2025.08.07 16:23:29
  • 최종수정2025.08.07 16: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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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화가.

ⓒ 연합뉴스
학벌을 중요시하는 미술계에서 영화 간판과 초상화를 그리던 무명 상업 화가가 180억을 들여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관을 고향에 건립한 작가가 있다. 외국인으로 생존 작가 최초로 국립 러시안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을 정도로 인정받기도 한다. 이와같이 입지전적 작가는 지난해 12월에 세상을 떠난 이상원(1935~2024)이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근대화를 경험한 그의 인생행로는 20세기 한국사의 굴곡 그대로이다.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그의 고향은 강원도 소양강댐 근처 오지 마을이다. 농사 외에는 다른 생업을 꿈꿀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가의 꿈을 키웠다.

춘천농고 재학시절 미술 시간에 선생님은 마시던 물이 반 남은 유리컵을 학생들에게 그려보게 했다. 이상원의 그림을 보고 선생님은 "데생 실력이 대단하다. 왜 농업학교에 들어왔느냐? 미술공부를 하려면 대도시로 가라"는 말을 한다. 이 말에 자극받은 이상원은 농업학교를 그만두고 열여덟 살 때 그는 무일푼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다. 그러나 숙식도 해결되지 않는 형편에 언감생심 미대 입학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노동판에서 일하다 페인트업자의 소개로 극장에서 영화 간판 그리는 일을 하게 된다.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재능을 발휘하다가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가 된다.

이상원 화가, '老病死 다시 生'

ⓒ 연합뉴스
박정희 대통령의 의뢰로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그렸고, 박 대통령의 초상화도 여러 점 그렸다. 우리나라 재계 인사들의 인물화는 거의 다 그렸을 정도였다. 건설사들이 선물로 가져갈 중동의 국왕이나 공주들의 초상화를 맡기기도 했다.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묘사가 뛰어난 기술자이지 화가는 아니야. 화가란 자신만의 사상을 가지고 정신적인 작업을 해야지"라고 한 노산 이은상의 충고가 그의 폐부를 찔렀다. 노산은 기념관에 걸 안중근 의사 영정을 무명 화가였던 이상원에게 맡긴 사람이다.

1970년 10월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개관은 장안의 큰 화제였다. 그 해 연말까지 수많은 인파가 기념관을 찾았다고 한다. 안 의사 영정 그림도 주목을 받았는데, 영정을 그린 사람이 불과 35세의 무명 화가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노산의 충고에 가장으로서 진로를 망설이고 있을 때 아내가 "순수미술을 하면 진짜 화가 대접을 받지 않겠나. 그 동안 벌어놓은 것만으로도 생활비로 충분하니 이제 당신 그림을 그려라"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김환기에게 김향안이, 장욱진에게 이순경이 있듯이 훌륭한 작가에게는 훌륭한 부인이 있는 것이다.

그는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우선 국전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수묵화를 시작했다. 노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양화가인 소정 변관식과 의재 허백련에게 사사 받도록 소개해준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 두 사람의 영향을 받은 점을 찾기 어렵다. 사사 받은 지 몇 개월 만에 참가한 국전에서는 수묵산수화로 입선했지만, 다음 해부터는 전혀 다른 작품을 그려냈다. "동양화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산수를 그리니 나는 그런 것을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젊을 때도 내 넥타이와 비슷한 걸 맨 사람을 보면 얼른 풀어서 주머니에 넣어버릴 정도였어. 그런 성미이니 앞서간 사람들이 해 놓은 걸 답습하긴 싫었어요. 남이 안 하는 것을 해야 내 것이 나온다는 정신 상태로 누구 그림과 비슷하게 그려지면 불태워 버렸어요. 작가란 자기 색깔, 목소리가 확실해야 해요. 남의 냄새가 나게 그리는 것은 작가가 아니야"라며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나간다. 이후 이 화백은 독학으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이상원 화가, '老病死 다시 生'

ⓒ 연합뉴스
세월이 흘러 2014년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화악산 자락에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들어선다. '자연 속 아날로그 미술관'을 표방하는 이상원미술관이다. 18세 때 큰 꿈을 안고 상경해 그림을 그린 이상원이 고향을 떠나온 지 60여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개관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금의환향이라 하는 것 같다.

거대한 원판을 세워놓은 듯 원형의 건물이 참신하고 매력적이며 산과 계곡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독학으로 자신의 미술 세계를 일궈 대가가 된 이상원의 50년 화력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이다. 이 곳에 전시돼 있는 그의 그림들을 보면 우선 뛰어난 묘사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상을 정밀하게 복제하는 하이퍼리얼리즘이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면서 그의 작품은 깊은 감정적 울림을 준다. 그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보이며 우는 관람객도 있다고 한다.

"그림 그리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껴요. 요즘도 저녁 먹고 뭔가 떠올라 잠시 화구 앞에 앉아서 손질하다 보면 날이 훤히 밝아오기도 합니다. 죽는 날까지 작업에 몰두할 겁니다. 그림 작업하다가 미완성인 상태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는 게 제 소원이에요"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뼛속까지 화가인 이상원은 그의 분신과도 같은 미술관에 마련된 영원한 안식처에서 쉬고 있다. 치열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해 성공한 이상원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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