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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8.06 14:29:55
  • 최종수정2025.08.06 17:22:45

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회장

누굴까? 이런 혜안을 지닌 이가. 메마른 회색빛 도심에 바다의 시원을 들여놓은 심상이 신선하다. 그것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 도시에….

동네 구경도 할 겸 저녁 산책에 나선 길이었다. 전에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마치 여행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간간이 불어오는 미풍이 저녁 공기를 가르고 있다.

사거리 건널목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무심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귀를 발견했다. 직사각 맨홀 뚜껑 위편에 '바다의 시작'이라는 다섯 글자가 정자체로 쓰여있다. 처음엔 회색 바닥에 있는 생뚱맞은 글씨가 낙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흰색 페인트 글자의 여운을 따라가던 내 상상력의 종착지에서 푸른 바다를 마주했다. 종일 이글거리던 땡볕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아스팔트 길 위에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듯했다. 순간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 돋보이는 짧은 문구의 설득력에 매료되었다. 다섯 음절의 예술 작품에서 뿜어나온 파동이 조용히 마음 문을 두드렸다.

짧은 문구에 곁들여진 그림을 다시 살펴보았다. '바다의 시작'이란 글 앞뒤에 ×자로 표기한 담배 그림이 있다. 맨홀 뚜껑 틈 사이로 버려진 담배꽁초들이 보였다. 메마른 도로에 바다를 펼쳐놓은 이유가 선명해졌다. 내가 서 있는 땅 밑, 오수가 지나가는 이곳이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니….

올해도 위협적인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해를 더해 갈수록 기상 이변을 체감한다. 지구 환경 변화를 걱정하면서도 우리의 대처방안은 능동적이지 못하다. 편리함과 편의성을 좇는 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게 지구 환경 문제는 의식과 실천이 따로 노는 것 같다. 바다는 늘 저 멀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세계 기후학자들은 말한다. 인류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결코 많이 남지 않았다고. 지구 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환경 운동가들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탄소 배출량 줄이기 등 범세계적 움직임이 활발하게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속한 종교 단체에서도 창조질서 회복 운동을 하고 있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가까운 거리 걸어 다니기, 밤 9시에 10분 동안 소등 및 TV 전원 끄고 기도하기 등.

가톨릭의 레지오 마리애 교본을 읽다가 마음에 담았던 내용이 있다. '온 인류는 한 몸을 이루며 그 하나의 몸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다. 생명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순환해야 한다.'라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빗방울이 떨어져 하천을 지나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고, 순환하는 여정에서 시작과 끝을 어떻게 규정하고 단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서 있는 모든 곳이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이 아닐까.

설거지하는데 주방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창밖으로 푸른 바다를 마주했던 사거리 건널목이 내려다보인다. 내 작은 행위 하나의 의미를 생각한다. 우리의 작은 실천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지구 회복을 위한 희망을 날개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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